나의 유학 도전기
이전 글들에서 몇 번 언급한 것처럼, 회사 젊은 직원들에게 가장 원하는 것을 말하라면 대부분 유학을 첫 손에 꼽을 것이다. 해외가 되었든 국내가 되었든 최소 1년에서 최대 5년까지 사무실을 떠나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큰 도전이자 기회이다. 게다가 자기 돈을 써 가며 유학을 떠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금전적으로 큰 부족함 없이 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으며 졸업 후 새 직장을 알아봐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나는 대학생 때부터 미국 MBA를 동경해왔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2000년대 중반은 한창 미국 MBA 출신 컨설턴트들이 활약하고 있을 때였고, 교내에서 B사, B사, M사 등 유명 컨설팅 회사들의 입사 설명회가 열리면 멋진 정장을 입은 컨설턴트들이 자신의 MBA 경험과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들려주곤 했다. 나도 해외 MBA를 다녀오면 영어도 유창해지고 멋진 경험을 하며 저들처럼 세련되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에 취업준비에 바빠지면서 어느샌가 이 꿈은 마음 한 구석에 방치되어 빛을 잃어갔다.
입사 후 이 회사도 해외 MBA 유학을 지원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기껏해야 1년에 2~3명 수준이었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려면 영어 점수는 물론이고 인사 고과도 굉장히 잘 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기에 험하게 고생하던 회사생활 초반에는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그저 옆 자리의 고참 조사역이 GMAT (Graduate Management Admission Test, 미국 경영대학원 입학 시험) 공부하는 걸 부럽게 쳐다보았을 뿐. 하지만 K실에서 2년간 좋은 인사 고과를 받고, GMAT과 TOEFL등 필요한 영어 점수를 하나 하나 만들어가면서 가슴 한켠에 구겨져 있던 꿈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래... 혹시 어쩌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2014년과 2015년 유학 지원서를 넣었고, 당연히 떨어졌다. 연차도 낮았고, 부서 전입 고참을 우선 순위로 밀어주는 것이 관행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2016년은 달랐다. 회사에서 유학 선발 시스템을 크게 바꾼 여파로 몇몇 유력 후보들이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우리 부서에서는 나 이외에 지원자가 아예 없었다. 또한 지난 4년간 고과도 굉장히 잘 받았고, 영어 점수도 높여 놓았으며, 사내 테니스부 총무로 4년간 일하면서 인맥도 나름 쌓았고, 부서 행사에도 (겨울 등산, 소프트볼 대회, 월간 테니스 모임 등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정말 할 수 있는건 다 했는데, 이번마저 떨어진다면 이듬해 초에 과장 승진과 함께 지방 발령이 날 확률이 거의 100%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 당시만 해도 지방 사무소에선 유학 선발을 거의 하지 않았고 과장 초반에는 승진 예정자들에게 고과를 빨리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으니 2016년은 나에게 세번째이자 사실상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인사팀에서 공지한 유학 선정자 발표일이 다가왔다. 아침 일찍부터 모니터 앞에 각 잡고 앉아 인터넷 브라우저를 연신 새로고침 해 가며 사내 포탈에 새로운 공지가 떴는지 모니터링했다. 긴장한 것이 너무 티가 났는지 신입이 다가와서 "한숨 푹푹 쉬시는데 무슨 일 있으시냐"고 나직하게 물어보기도 했다. 친구, 몇년 후에는 내 심정을 이해하는 날이 올 거야.
갑자기 메일 알림이 쏟아졌다. "솔아 축하해!", "축하합니다", "대박이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사내 포탈의 게시물을 열었지만 사실상 확인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지난 몇년간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국장과 팀장, 그리고 팀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돌았는데, 그 때 무슨 말을 했고 무슨 덕담을 들었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다만 팀장의 말에 따르면, 나는 그렁그렁해진 눈과 시뻘개진 얼굴로 앞뒤 다 잘라먹고 "팀장님, 됐습니다!"만 반복했다고 한다 (.....). 지금이야 그 때를 돌아보면 부끄러움에 이불을 걷어차고 싶지만, 그때는 그야말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