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키지 않았던, 하지만 해야만 했던
회사의 평균 근속 연수는 거의 20년에 달한다. 일부를 빼고는 거의 정년까지 근무한다는 이야기다. 간혹 생기는 퇴직 사례는 박사 학위 취득 후 대학교수 임용 혹은 연구기관 취업 정도이며, 간혹 회사의 유학 선정을 기다리기 힘든 직원이 퇴사라는 배수진을 치고 박사학위에 도전하기도 한다.
퇴직자가 적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전문직이나 대기업에 비해 보수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업무강도를 고려하면 불평할 수준은 절대 아니고, 사고만 치지 않으면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으며, 한국의 누구와 명함을 교환해도 부끄러울 일이 없다. 그렇기에 나같이 박사 학위도 없는 사람이 이직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큰 돈을 벌거나 권력을 쥐어야겠다는 야망에 불타는 것도 아니고, 딸린 입이 있어 도전 의식이 불타기도 어려운 사람이 왜 굳이 험한 길을 자청해서 갔을까?
출국 당시 이직 생각은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 회사 동기들, 심지어 야구부 동료들에게도 내가 남긴 말은 거의 같았다. "잘 다녀올게! 2년 뒤에 봐요" 혹시 구글이나 아마존이 모셔간다면 모를까 (물론 그럴 일도 없겠지만), 내가 왜 굳이 한국 최고의 직장을 내 발로 차고 나가겠는가? 그것도 유학까지 다녀와서 말이다. 그렇기에 MBA 초반 다리가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해서 수업 및 각종 행사 참여가 제한적일 때에도 몸은 불편할지언정 마음은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만약 취업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가장 중요한 첫 학기에 각종 모임에 참여하기 힘들게 되었음을 너무나 안타까워했으리라.
미국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 '아이 키우기엔 미국이 좋다'며 이직 시도라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이야기했지만 대부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한국에서 그동안 일궈온 것들을 포기하기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도 두려웠고, 회사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거의 2억 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반납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지내면서 자폐가 있는 아들 태민이가 성장하는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고, 한국의 척박한 환경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내 마음도 '일단 시도나 해보자'는 쪽으로 기울어 갔다. 일단 여러 개 오퍼를 받고 난 다음에 고민해도 늦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국 리크루팅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험난했고, MBA 졸업 직전에야 겨우 하나의 오퍼를 받을 수 있었다. 간신히 생활만 할 수 있는 수준의 연봉과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비자, 영주권 등의 불확실성 등은 나와 와이프를 엄청난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최고의 기업에서 오퍼를 받아도 꽤나 고민했을 텐데 하물며...
하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아이가 어떤 취급을 받을지 너무나 잘 알기에, 결국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2019년 5월 28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동기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했다. 그들이 내 퇴직 소식을 회사 게시판을 통해 알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할 말이 많아 줄이는 게 힘들 정도였기에 A4 한장을 채우는데 고작 한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동기 한명에게 전달을 부탁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내 핸드폰은 수십명으로부터 온 카카오톡 메시지로 인해 연신 울려대기 시작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두세명을 제외한 동기들에게는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였으리라. 박사도 아니고 Top school MBA를 나온 것도 아닌 내가 퇴직을 한다니...
편지를 쓰고 나서 인사팀에 퇴직 의사를 이메일로 통보했고, 다음날 아침 동기 Y가 카톡으로 보내온 회사 게시판 사진에는 내 퇴직 발령서가 게시되어 있었다. 입사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퇴사는 고작 이메일 한통이면 되는구나. 허탈하고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