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17년 만의 귀환

Hi again, Musical!

by Sol Kim

내 대학생활의 8할은 연극이었다. 새내기 시절이던 2004년 여름방학 때 덜컥 시작한 서울대학교 인문극회의 '연극학교'에서부터 3학년 1학기 연극 '이 (爾)' 연출을 마치고 입대하기까지 내 삶은 연극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주 5회 연습과 매일 같은 새벽 1시 반 귀가 & 아침 9시 수업에도 지치지 않던 체력과 열정은 대체 어디서 나왔던 걸까? 인문극회의 정기 공연들 중간에는 총 연극회 + 마당패와 연합하여 학내 외에서 '연애권장법 대소동'이라는 뮤지컬을 공연하는데 함께하기도 했다. 군 복무 중 극회가 사실상 해체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제대 이후 학과 공부와 테니스 동호회 활동에 집중했지만 뭔가 앙꼬 없는 찐빵 같은 대학생활에 실망한 나는 계획에도 없는 4년 졸업으로 노선을 바꿔버렸다.


그 이후에도 일 년에 몇 차례씩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대학로나 유명 극장들을 찾아다녔지만, 다시 내가 공연을 준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결단코 한 번도 없다. 일단 졸업 이후 취직, 이직, 결혼, 유학준비, 육아로 인해 너무나 바빴고, 이 와중에 1년에 70-80경기씩 야구 경기를 다니느라 없는 시간마저도 쪼개며 사는 판에 최소 3-4개월을 온전히 투자하는 연극을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2017년 유학을 나와서는 공부에 이직에 영주권에 당면한 현실이 절박해 공연 관람하러 갈 여유조차도 거의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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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전 주일 아침, 평소와 같이 예배 전에 찬양대 연습을 하고 있는데, 앞자리에 앉은 J 집사님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집사님, 키 얼마예요? 노래는 잘해요?"


질문의 목적을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말해준다고 해 될 이야기도 아니고 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올해 말을 목표로 교회 팀이 뮤지컬을 준비하는데 키가 어느 정도 되고 좀 젊은 남자 배우를 찾는단다. 노래를 꽤 잘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사실 썩 내키지 않았는데, 2023년이 업무적으로도 다른 것들로도 꽤나 바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공연을 준비할 때야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우니 'whatever it takes' 일수도 있겠지만, 학생이 아닌 가족 딸린 직장인이 되고 나니 공연 준비를 위한 시간과 노력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관심 있냐는 J 집사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답을 한 것도 그래서이리라.


하지만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정말 그날 오후는 신기하게 흘러갔다. 점심 무렵 중창단 연습 후 귀가하는 길에 걸려온 J 집사의 전화에 잠깐 연출의 얼굴만 보고 가려했는데, 어느새 오디션을 보고, 팀에 들어가기로 약속하고, 마침 잡혀있던 오후 전체 미팅에서 인사를 나누고 집에 오니 어느새 사위는 어둑어둑. 와이프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풀어놓으니 "내가 주보에서 보고 말해줬을 때는 관심 없다더니!"라며 피식 웃는다. 아 그랬던가...


잦은 출장과 바쁜 업무, 인생의 default인 야구, 요새 재미를 붙인 테니스, 태민이 육아 등 사실 충분히 일이 많은 삶이라 이것까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어쨌든 길이 정해졌으니 17년 만에 다시 돌아갈 무대를 잘 준비해보려 한다. 그때의 떨림과 전율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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