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덕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찾아간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질긴 것이 인연이라 한다. 이 말을 처음 들은 어릴 적엔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지만, 사회에서 필요에 따라 쉽게 맺고 끊어지는 인간관계를 꽤나 경험하면서 오히려 이를 이해하기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몇 년 전 있었던 작은 사건 하나는 새삼 세상이 좁음을, 그리고 인연의 실타래가 생각보다 질김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동네 친구 H는 어릴 적부터 말 그대로 꽃미남이었고, 나이 삼십을 넘긴 지금도 조각 같은 미모를 유지하고 있다. 중학생 때부터 지나가던 연예기획사 관계자에게 종종 명함을 받을 정도의 외모 덕에 주변으로부터 연예계에 진출하라는 조언을 많이 받았지만, 그는 언제나 자기 성격에 맞지 않는다며 무시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대학 입학 후 연극 동아리에 푹 빠져 살더니 결국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 석사로 진학하여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럴 거면 진작 어릴 때부터 그냥 연예계로 가지' 하는 생각과 '지금이라도 적성 찾은 게 다행이다'는 생각이 번갈아 지나갔다.
대학교 동창인 J와는 사실 별다른 접점이 없어야 했다. 인문대 연극반 (인문 극회)에서 활동했던 나와 달리 그는 중앙동아리 (총 연극회) 멤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2004년 가을부터 시작된 '연애권장법 대소동' 뮤지컬에 함께 참가한 것을 계기로 우리는 친해지게 되었고, 그의 공연에 내가 제작진으로 참가하기도 하고 내가 연출을 맡았을 때 그가 도움을 주는 등 졸업할 때까지도 꾸준히 친하게 지내게 된다. J 또한 어느 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 석사에 합격했다고 연락이 왔는데, H에게 연락을 받은 지 고작 며칠 후였다. 일 년에 스무 명도 뽑지 않는 과정에 내가 아는 둘이 동기로 입학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할 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결혼에 육아까지 겹치며 바쁘게 지내던 어느 겨울날 저녁, H와 J가 같이 이인극을 올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전의 공연 초대들은 대부분 평일 저녁인 데다 한국예술종합학교까지 먼 길을 가야 하는 탓에 어지간해서는 신경 쓰지 못했는데, 하필 둘이서 공연을 올릴 줄이야. 이건 부득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월 23일 금요일, 일찍 퇴근하여 공연장으로 향했다. 6호선 돌곶이역 지하철역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건물로 향하는 길은 인적이 거의 없어 매우 적막하다. 거기에 해당 학교 건물이 과거 악명 높던 안기부 건물을 리모델링했다는 사실이 더해지면 혼자 걷기엔 매우 으스스한 상황이 된다. 학교 졸업생인 내 동생의 말에 따르면, 지하 1층보다 아래로 향하는 길은 철창으로 폐쇄되어 있고 아래층으로부터 오싹한 냉기가 올라온다고 하며, 수업이나 연습 중 무언가를 보고 기절하는 일도 꽤나 있다고 한다. 추운 날씨에 무서운 생각까지 겹치니 자연스레 걸음을 더 빨리 하여 공연장으로 향했다.
관객은 대부분 학교 선후배들인지 다들 트레이닝복이나 패딩 등 편한 복장이었다. 그들만의 잔치에 나 혼자 외부인인 듯한 느낌에 괜히 어색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공연은 10~15분짜리 이인극 세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극 사이에 국면 전환 및 무대 재배치를 위한 2분여간의 암전이 이루어졌다.
첫 작품인 ‘Guys(Robb Badlam 作)’는 머릿속엔 섹스만 차 있고 가슴이 제일 좋지만 정작 여자 앞에서는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두 친구의 이야기이다. 멍하니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시간을 보내며 여자 이야기만 주고받다가 정작 그 이상형이 출현했을 때 이들이 보이는 반응이 극의 포인트. 말을 걸러 갈까 말까 죽을 듯 고민하며 망설이는 H와, ‘네가 진짜 가서 말 걸면 오만 원 줄게’를 외치는 J의 콤비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 10대나 20대 남성들이 자신들의 모습과 비교해보며 재미있어할 만하다.
두 번째 극은 ‘Tech Support (Henry Meyerson 作)’. 성질 급한 고객과 그를 약 올리는 능구렁이 전화상담원의 대비가 재미를 준다. 일부러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서 고객을 안달 나게 하고, 기껏 고객이 상황 설명을 마치면 자기 담당이 아니니 다른 상담원에게 돌린다고 거짓말을 하며 전화를 끊고 낄낄거리는 상담원의 그 얄미운 표정이란... 기업의 비용 절감을 위한 시스템 분업화·자동화에서 인간의 선의와 충실이 결여될 경우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웃음 속에서도 씁쓸한 뒷맛이 남았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이자 가장 인상 깊었던 세 번째 극의 제목은 ‘Pancakes (Peter Morris 作)’이다. 두 친구가 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몇 달째 공짜로 얹혀사는 친구를 대하는 집주인의 태도는 마치 노예를 대하는 주인과 같다. 팬케이크 약간을 원하는 친구에게 대한 대답 대신 집주인은 접시에 그득히 쌓인 팬케이크에 침을 뱉는다. ‘내가 왜 너에게 이 팬케이크를 줘야 하지?’ 눈을 빤히 뜨고 질문하며 미국의 독립선언문 및 헌법을 언급하는 장면은 이미 이 관계가 돌이키기 어려움을 짐작케 한다. 친구가 일할 의지조차 없다며 ‘팬케이크를 원하면 무언가를 하라. 이곳은 기회와 자유의 나라’ 임을 역설하는 집주인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득권층의 논리를 연상케 했다. 물론 이 핑계 저 핑계로 자신의 상황을 변호하는 친구의 태도가 아쉬운 면이 있긴 했지만 그런 인간 이하의 냉대 및 모욕을 감당할 이유는 될 수는 없다. 팬케이크를 먹고 싶으면 자신의 구두를 혀로 닦으라는 제안. 배고픔을 참지 못해 입을 가져다 대는 친구를 발로 차 버리며 그를 비웃는 잔인함. 그러면서 ‘오늘은 이 도시의 친절함을 담당하는 업무 때문에 바쁘다’고 웃는 집주인의 모습은 그의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이 극의 하이라이트는 절망한 친구가 무릎을 꿇고 자못 희극적으로 ‘그대는 팬케이크의 왕’이라고 외치고 집주인은 ‘그래 내가 왕이다’라고 맞받아 외치는 장면이다. 심각한 상황임에도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장면. 그 장면 직후 친구는 집주인의 얼굴과 머리에 시럽을 가득 뿌리고 목 졸라 살해해버린다. 이후 친구가 허겁지겁 팬케이크를 씹으면서 시체를 향해 중얼거린 '네 말이 맞다.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대사. 그때 느낀 묘한 감정은 그 당시도 지금도 뭐라 형용하기 힘들다.
공연에 대한 큰 기대보다는 일종의 의무감 비슷한 기분의 관극이었지만 생각보다 대본 선택도 좋았고 두 배우의 호흡도 괜찮았다. 다만 무대 위의 배우들이 친구여서인지 연극 속의 ‘인물’이 아닌 연기하고 있는 ‘친구’가 보여서 극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점이 아쉽기는 했다. 아무튼, 그날은 친구들과의 질긴 인연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한 잊기 어려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