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연애권장법 대소동'

열정으로 뜨거웠던 2004년 겨울

by Sol Kim

나는 겨울을 싫어한다. 테니스와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겨울은 그저 비시즌이자 빨리 보내버려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고마울 때도 있는데, 로맨틱한 연말의 기억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때문도 아닌 바로 20년 전 참가했던 한 뮤지컬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2004년의 겨울을 잊지 못하게 해준 뮤지컬 ‘연애권장법 대소동’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시작은 단순했다. 2004년 여름방학 중 학내 연극판 선배 서너 명이 동아리방에 모여 '우리도 뮤지컬 한번 해볼까?’했던 가벼운 제안. 요새야 대학교에 뮤지컬 동아리들도 있고 일반 연극 동아리에서도 한번 해보는 게 뮤지컬이지만, 이때만 해도 연기, 안무, 조명, 작곡 등 다양한 분야에 신경을 써야 하는 뮤지컬을 학내에서 올린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세 개의 학내 동아리 (서울대 총연극회, 인문극회, 마당패탈) 및 이들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한예종 출신 안무가, 인디밴드 ‘눈뜨고 코베인’ 출신의 작곡가 등을 영입하여 극단 ‘이니’를 결성하였고 (‘니들이 극단이니???’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결국 그해 12월 하순에 서울대학교 공연 전문 시설인 두레문예관에서 3일간의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극은 21세기 후반 미래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출산율 저하로 인한 경제 불황과 성장 잠재력 약화에 고민하던 정부는 해결책으로 전 연령층 연애의 활성화를 해법으로 꺼내 들게 되고, 이를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애권장법」을 제정하게 된다. 동 법은 일정한 테스트를 거쳐 ‘커플 등록증’을 발급받는 커플에게만 각종 사회적 우대를 제공함을 명기하고 있다. 당연히 커플 등급이 높을수록 혜택의 수준도 올라가며, 등록증이 없는 싱글들에게는 식당, 영화관, 심지어 지하철 탑승에서마저 불이익을 주는 법인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플 등록증 획득을 위해 혈안이 되며, 오로지 소수의 대학생들만이 동 법을 ‘비인간적 악법’이라 규탄하며 투쟁하고 있다. (아무래도 제작진, 배우, 관객들까지 전부 대학생이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그렇다. 이때까지도 대한민국은 징병제 국가인 것이다!) 제대한 주인공 ‘철민’의 앞에 두 쌍의 친구들이 등장한다. 철민을 연애의 길로 계도하여 커플 등급을 올리고 싶은 ‘영석’& ‘윤주’, 그리고 연애권장법 반대 투쟁에 동지를 끌어들이고 싶은 ‘성현’&‘이연’. 이들 넷이 철민을 사이에 두고 다투는 사이 간신히 빠져나온 철민은 커플 등록증 없이 살아가기 너무도 힘든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 커플이 되기 위해 연애 전문 학원에도 가보고 특강도 들어보지만 그에게 연애는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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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연애전문학원에서 수작(?)을 거는 건달 (필자) // 우: 악법 '연애권장법'을 폐지하기 위해 투쟁중인 성현



이때 철민의 눈앞에 나타난 운명의 여인 ‘민영’. 둘은 어느새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함께 식사도 하고 요새 유명하다는 '마당극의 귀신' 뮤지컬 (그 당시 유행하던 The Phantom of Opera의 오마쥬였다)도 보러 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두 연인. 하루빨리 커플 등록증을 만들고 등급을 올리고 싶은 철민과는 달리 민영은 ‘우리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며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결국 조그맣게 시작되었던 균열은 점점 커지고, 둘은 결별의 길을 걷고 만다.


극의 후반부에는 커플 등록증 발급장에서 다양한 커플들이 시험을 치르게 된다. 철민의 친구 영석과 윤주는 커플 등급을 올리기 위해 오지만 실패하여 서로를 탓하며 돌아가고, 나이 지긋한 홀아비와 과부 커플은 시험 첫 단계부터 문제를 맞히지 못하여 탈락하지만 ‘이런 등록증 없으면 어떠냐?’고 당당히 외치며 퇴장한다. 마지막에는 모든 배우가 무대로 나와 ‘사랑이란 같지 않은 것’이라는 주제곡을 부르며 공연이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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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마당극의 귀신' 도입부 // 우: 홀아비 "맹씨"의 열럴한 구애







지금 돌아보면 순수 아마추어 창작 공연이다 보니 스토리도 그다지 정교하지 못하고 노래나 안무의 수준도 프로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어려운 것, 사랑이란 같지 않은 것’이라는 노래 가사에서 나타나듯 다양한 사랑의 시작, 갈등, 헤어짐이라는 소재를 통해 ‘사랑은 (타인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닌) 나와 상대와의 교감’라는 메시지를 동년배의 관객들에게 전달하기엔 과히 나쁘지 않은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도 ‘연애권장법 대소동’은 쉬지 않았다. 2005년 상반기에는 거창국제연극제 및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하반기에는 현대백화점 대학 연극축제서울대학교 가을축제 축하공연 등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을 진행하였다. 극의 제목은 그대로였지만 학업 및 개인 사정 등으로 배우 교체도 잦았고, 스토리 개작 및 일부 주제곡 교체 등도 종종 일어났기에 인해 매너리즘을 느낄 새도 없이 늘 새로운 기분으로 연습에 임하곤 했다.


연애권장법 대소동 공연을 하던 약 9개월간은 내 삶에서 가장 분주하고 빛나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무슨 에너지로 이런 스케줄을 소화해내나?’ 싶었을 정도로 빡빡하게 짜인 생활을 지속했었고, 어머니도 종종 ‘너 그러다 큰일 난다’ 하셨을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행복했던 기억만 떠오르는 이유는 공연 그 자체가 너무 행복하고 같이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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