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와 본적 있어요?

by Sol Kim

강렬한 경험이었던 뮤지컬이 끝나고 2005년이 왔다. 그해 인문극회 봄 공연은 학내 공연장 뿐 아니라 인문대의 새터에서도 (새내기 배움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라고 이해하시면 된다) 진행할 계획이었기에 꽤나 중요한 행사였다. 대학에 갓 입학해 앞으로 펼쳐질 찬란한 대학생활을 기대하고 있을 신입생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 그들이 극회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까. 연습이 지겨울 때마다 이번에 잘 해야 후배가 들어온다는 생각을 하면 절로 없던 힘이 솟아나곤 했다.


봄 공연의 제목은 이강백 작가의 '사과가 사람을 먹는다' 였다. 그리 길지 않은 작품으로, 과수원의 수전노 아버지와 그의 아들, 늙은 하녀로 지칭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우화 같은 작품이다. 이 때는 '사과가 사람을 어떻게 먹냐' 하며 제목을 우스워했지만, 글쎄, 자본이 사람을 쓰고 버리는게 (사람이 돈을 쓰는 것처럼) 당연한 사회를 살아내다 보니 이제 이 정도는 별로 부조리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찌 됐건, 이 공연에서는 과수원 아들 역할을 맡았지만 내가 뭘 했는지는 사실 거의 기억이 안나고, 연습과 공연 내내 풍기던 사과 냄새 (배경이 과수원이다 보니 사과는 필수 소품이었다) 그리고 일하다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노동자가 쫒겨나게 되자 사과를 입에 담은 채로 흐느끼던 장면만 뇌리에 남아 있다.


492242_44946_737 (1).jpg 사과가 사람을 먹는 장면이 (아쉽게도?) 나오지는 않는다




열과 성을 다 바쳐 했던 동아리 생활이었지만 자금조달은 정말 하기 싫은 일이었다. 인문대에서 동아리 지원금이 나오긴 했지만 충분하진 않았기에 공연 마다 자금을 추가로 마련해야 했다. 어떤 동아리는 인당 몇만원씩 나눠서 내기도 했지만 인문극회에서는 녹두거리 (고시촌) 가게들을 돌면서 가게 홍보를 제안하고 찬조를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달 뒤 있을 우리 정기 공연 팸플릿에 가게 상호와 연락처를 실어드릴테니 조금만 도와주시라'는 식이다. 큰 돈도 아닌 5천원, 만원을 위해 바쁜 가게 사장님들을 붙들고 읍소하는게 어찌나 속된말로 쪽이 팔리던지... 나는 갹출에 투표했지만 언제나 소수파였다. 물론 과외를 통해 등록금과 생활비 모두를 해결해야 하는 팀원들도 심심찮게 있었기에 투표 결과를 존중하긴 했지만, 차라리 이 시간에 연습을 하거나 쉬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화가 없다. 열명 가까운 멤버가 몇시간씩 돌아서 모아오는 돈이라 봐야 10-20만원 남짓이었으니...


가게 사장들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닌지라 대부분 반가워하지 않았다. 단골 노래방 사장님을 찾아 갔을 때는 '아유, 당연히 도와야죠!'라며 인심좋게 2만원이나 건네셨지만, 사실 몇천원이라도 주는 건 운이 좋은 경우였다. '우린 그런거 안합니다', '요새 형편이 안좋아서..', '죄송합니다. 지금 바빠서 나중에 오세요' 등 세상에 거절의 방법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새삼 배웠다.


그 많고 많던 거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여자 동기와 짝을 이루어 어떤 호프집을 찾아갔었는데, 안주를 굽고 있던 사장님은 내가 어렵게 말을 끝내자 마자 고기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퉁명스레 말했다.


여기 와 본적 있어요?


순간 정적. 얼굴이 빨개진 채 한 마디도 꺼낼 수가 없었다. 한번도 와 본적 없는 가게에서 내가 지금 뭘 하는건지 자괴감이 너무 심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옆에 있던 동기가 '그럼요! 저 여기 꽤 자주 들러요!'라며 명랑한 목소리로 지원 사격을 했고, 그제서야 사장님은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본 뒤 오천원을 금고에서 꺼내어 건넸다. 동기가 그 호프집에 자주 갔는지, 아니 한번이라도 들른 적이 있는지 물어볼 기회는 끝내 없었지만, 난 지금까지도 그 순간 나를 구해 준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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