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갈등

by Sol Kim

2006년 초, 봄 공연의 연출을 맡았다. 그 해 가을 군 입대가 예정되어 있었던 나에게 마지막 공연이었다.


2005년 겨울, 한국은 '왕의 남자' 열풍이었다. 연산군 시절 '장생' (감우성)과 '공길' (이준기)이라는 두 명의 광대가 궁으로 들어가 정치판과 암투에 복잡하게 얽히는 이야기로, 감우성, 정진영, 이준기 세 남자 간의 우정과 사랑 사이 미묘한 감정선을 잘 보여주며 관객수 1200만이라는 압도적인 숫자를 남겼다. 이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인지, 봄 공연을 준비하며 여러 대본을 검토하던 우리는 큰 이견 없이 '왕의 남자' 원작인 연극 '이(爾)'를 선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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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爾)’는 신하를 높여부르는 호칭으로, 공길이 벼슬을 얻어 임금에게서 ‘이’라는 호칭을 듣게 된 것을 뜻한다.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잠재된 리스크들이 있었다. 어떤 것들은 수월히 지나갔고, 어떤 문제는 실제로 이슈가 되었지만 그럭저럭 덮어졌으며, 실제로 대 폭발해서 후유증을 남긴 것도 있다.


1. 무려 천만 관객 영화의 원작이다. 영화 유명세의 덕을 볼 수도 있지만, 이미 영화를 통해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다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똑같은 것,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보러 공연장에 찾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우리는 이 부분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좀 아쉬운 부분이다.


2. 지난 글에서 말했듯 인문극회는 만성적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 작품은 광대가 궁궐에 들어가 공연을 하는 이야기인만큼 극중극인 마당놀이가 정말 중요했는데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사람도 없고 경험도 없으니 학교 마당극 동아리인 '마당패 탈'에 협조를 구했고, 그 쪽도 흔쾌히 응하여 합동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이긴 했지만, 몇 년간 얼굴을 보고 공연을 같이 올린 사이여도 다음 공연을 준비하면서 크든 작든 갈등이 생기게 되는데 친분이 없던 사람들과 처음으로 손발을 맞추다보니 아무래도 삐걱대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3. 다른 걸 다 떠나서 연출인 내가 경험과 내공 모두 부족했다. '이 공연을 통해 보여주고/나타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보이는 부분의 완성도를 높이는데만 신경을 많이 쏟았다. 배우들과의 소통도 부족했는데, 특히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연 내내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에 다른 극회 인원이나 선배들의 조언을 구하고 연습 때 초빙해서 코멘트를 받기도 했지만 그 또한 배우들의 떨떠름한 반응만 낳을 뿐이었다.






연산군 역할을 맡은 J는 다른 극회원들 못지않게 자기 스타일이 강했다. 연습 시작부터 자기는 과외를 해서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때문에 연습에 다 참여할 수는 없다고 했고, 충분히 이해할만한 이유였기에 연습 스케줄을 그에 맞춰 최대한 조절해 주었다. 하지만 공연 1-2주 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주 6-7일을 연습에 참여해서 완성도를 최대한 올려 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외가 있는 날에는 연습에 참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에 대해 정확히 말해 두고 합의해 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공연 직전에는 수업이고 과외고 개인 일정을 전부 비우는 것이 상식이었던 나에게 막판까지 자기 스케줄이 우선인 J는 이해 불가의 존재였다. 결국 정확히 공연 개막 일주일 전 그와 나는 정면으로 충돌했고, '이럴 거면 공연 왜 하는 겁니까'라는 나의 말에 '그러면 그만두죠 뭐'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뭐? 지금 장난하니?


다른 사람들의 중재도 있었고 서로 한 발씩 물러섰기에 결국 공연은 올릴 수 있었지만, 이후 J가 싸이월드에 나를 과녁으로 한 장문의 비판글을 남겼고 여기에 욱한 나도 평소에 섭섭했던 점을 이야기하며 게시판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차라리 쌍욕을 하더라도 술자리에서 얼굴을 보고 하면서 쌓인 걸 풀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나도 내가 연출로서, 팀의 리더로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있었기에 이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다른 배우가 이런 얘기를 했으면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J가 이런 이야기를 한게 더 화났던 것도 사실이고. 아무튼 입대 전 마지막 공연은 결과적으로 대 실패로 끝난 셈이다. 공연이 끝나고 남는 건 결국 추억과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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