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하면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공간은 인문대 3동 2층에 있던 인문극회 동아리방이다. 경영학 전공 공부는 안 하고 연극이나 고전, 철학, 종교 등의 수업을 듣느라 경영대보단 인문대 근처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고, 공강 시간엔 자연스레 동아리방에 들러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아니면 부원들과 수다를 떨었다. 수십 년동안 쌓인 포스터, 팸플릿, 문학잡지의 눅눅한 종이 냄새, 낡아서 속이 터져 나온 소파, 세월에 바랜 이름 모를 선배들의 단체사진들이 묘하게 어우러진 동아리방은 세련되진 않았지만 푸근했다. 하늘 같던 90년대 초중반학번 선배들도 동아리방에 자주 드나들었고 처음에는 나이와 경륜 차이가 느껴져 어색했지만 자주 얼굴을 보다 보니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대부분의 극회 멤버들은 자기 색깔과 개성이 굉장히 강했다. 나쁜 사람은 없었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아니다 싶은 것에는 직설적으로 맞서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다 보니 대화 중 직설적인 피드백에 상처를 받기도 했고, 부원들의 토론을 별생각 없이 듣고 있다가 갑자기 높아지는 목소리에 당황하기도 했다. 본인도 한 개성 하시던 선배 S의 명언을 빌리자면,
덕분에 공연 준비 중 극이나 인물에 대한 해석, 진행 방향, 개인적 호오등 다양한 이유로 언성이 높아지며 충돌하는 경우가 흔했고, 연습이 끝나는 밤 10시면 습관처럼 녹두거리 고시촌에 있는 허름한 호프집으로 가서 밍밍한 맥주를 들이켜면서 쌓인 것들을 푸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2005년 여름 공연은 유미리 작가의 "물고기의 축제"였다. 가정 불화로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이 막내아들의 장례로 인해 모이게 되고, 그동안 곪아왔던 상처와 과거의 아픈 추억을 반추하고 나누면서 결국 가족은 가족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이야기. 밉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을 한 자리에 모으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본인의 자살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음을 암시하는 막내아들의 일기가 공개되는 장면은 아직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진다.
여름 공연에서 나는 기획을 맡게 되었다. 기획이란 극 연출을 제외한 모든 것을 총괄하는 자리이며, 제일 중요한 임무는 연출과 배우, 배우와 배우, 혹은 스텝과 연출 사이에 발생하기 마련인 크고 작은 갈등들을 봉합하는 일이다. 물론 다른 다양한 일들 - 일정 조율, 배우 및 스태프 섭외, 각종 예약, 물품 조달 등등 - 또한 기획이 책임져야 한다. 신입부원 시절 연극 팸플릿을 처음 보았을 때는 왜 기획 이름이 연출보다 먼저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한번 기획을 하며 고생해 보니 역시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연극 경험도 많지 않던 내가 중요한 역할인 기획을 맡아야 할 정도로 그 당시엔 사람이 많이 부족했다. 서울대 간판만 있으면 취업 걱정이 없었던 90년대와 달리 2000년대 초반은 "요새는 1학년들도 도서관에 보이더라"라는 말처럼 대학의 낭만이 말라가는 시기였다. 이에 취업과 관련 없는 동아리 (연극, 노래, 운동 등등)들은 신입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이 모자라니 대본을 수정하면서 비중이 적은 단역들을 뭉텅이로 잘라내기도 했고, 몇몇 필수적인 역할들조차 불과 공연 2-3주 전에 구해지기도 했다. 나도 다른 극회나 마당패 등에서 음향, 조명 등의 스태프를 구해 오고, 직접 청계천 상가에 가서 무대 및 조명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 오는 등 바쁘게 움직여서 빈자리를 메꿔야 했지만, 다행히 팀 내부에서 큰 갈등이나 삐걱거림은 없었기에 공연은 큰 문제없이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