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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Mar 04. 2023

New Career in U.S.

응용행동분석 (ABA) 전문가로의 첫 발

이민이 수고롭고 험난한 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실 것이다. 문화와 언어, 사업 및 직장, 신분, 자녀 교육 등 많은 부분이 한국과 다르고 어떤 부분은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를 겪어내는 가장들의 수고와 어려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배우자의 희생이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아내들이 남편의 직장과 학업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포기하고 미국에 오지만, 설령 남편의 일이 잘 풀려 미국 정착에 성공하더라도 아내가 기존 커리어와 업무 경험을 살려 재취업할 가능성은 (IT 개발자나 변호사, 의사 등 일부 직종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굉장히 낮다. 일단 미국 학위가 없고, 언어도 부족한 경우가 많으며, 설령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다 해도 미국 회사 경력과 인맥이 없기에 괜찮은 자리에서 인터뷰를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대중교통이나 학원 버스 등의 시스템이 없어 부부 중 한 명의 방과 후 사교육 라이드가 필수적이기에, 결국 아내들은 육아 및 살림을 전담하는 경우가 많고 설령 일을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시간 활용이 자유로운 파트타임을 주로 선택하게 된다. 본인이 이에 만족한다면야 전혀 문제가 아니겠지만, 사회생활과 자아실현에 가치를 두는 분들에게 이는 상당히 큰 희생일 것이다.


영주권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배우자도 합법적으로 미국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고민을 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영주권 카드가 손에 들어오자 '앞으로 무얼 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주제가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와이프는 한국에서 지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긴 했지만, 영어 및 미국 학위 부재 등의 이유로 기존 커리어를 이어가는 안은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자폐가 있는 아들 태민이는 앞으로도 부모의 손길과 간섭이 많이 필요할 텐데, 둘 다 풀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아이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이 긍정적이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럼 다른 선택지는 무엇이 있을까? 시간 제약이 크지 않아 업무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했고, 와이프 본인의 희망과 적성에도 맞아야 했다. 설령 당장의 소득이 크지도 않더라도 향후 개인 사업 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면 금상첨화였고. 긴 고민 끝에 내린 우리의 결론은 BCBA (Board Certified Behavior Analyst)였다. BCBA란 발달장애가 있는 아동들의 행동 데이터를 분석하여 이를 교정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전문가를 칭하며, ABA (Applied Behavior Analysis, 응용행동분석) 테라피 센터 및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적절한 테라피를 제공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자폐 아동의 숫자는 매년 급격한 속도로 늘고 있어 자기 일만 잘하면 밥 굶을 걱정은 없고, 컴퓨터나 로봇으로 대체될 수도 없으며, 아이를 잘 돌보는 와이프의 적성에도 맞는 직업. 몇 년의 경력만 쌓으면 본인의 이름을 걸고 테라피 센터를 차릴 수도 있다. 사업이 번창해서 태민이나 그의 친구들을 직원으로 채용할 경우 우리가 늘 고민하는 '얘는 앞으로 뭐 먹고사나?'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문제는 첫 한 발이다. 와이프에게 BCBA가 되기 위한 가장 어려운 관문은 자격증 시험도, 2년의 석사 과정도 아닌 바로 2천 시간의 Field work이었다. Field work은 ABA 테라피 센터에 테크니션으로 채용된 뒤 선배 BCBA들의 지도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테라피 센터에서 과연 더듬거리는 언어의 동양인을 테라피스트로 뽑아줄까? 설령 채용이 된다 해도 '미국 아이들'과 '영어'로 하루 8시간 내내 놀아주고 가르칠 수 있을까? 와이프가 일을 잘할 것이라는 점은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이 두 가지는 정말 큰 물음표였다. 와이프가 석사를 밟고 있는 학교는 타 주에 있기에 referral 등을 통한 취업 지원 등도 기대하기 쉽지 않았고, 교수도 그저 원론적인 조언만 할 뿐이었다.


결국 또 내가 총대를 메게 되었다. 와이프의 LinkedIn 계정을 만들고, 이력서를 통째로 뜯어고친 후 LinkedIn 계정에 업데이트하고, 우리 동네에 있는 각종 테라피 센터들에 지원서를 냈다. 사실 이 일들을 하면서도 '과연 이런다고 인터뷰라도 들어올까?', '곧 연말인데 진행되겠어? 빨라야 내년에나 연락 오겠지' 라고 자조했는데, 놀랍게도 불과 1-2주 만에 LinkedIn을 통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테라피 센터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약 한 달 동안 두세 번의 인터뷰와 모의 세션 등을 거쳤고, 놀랍게도 곧 오퍼 레터가 날아왔다. "축하합니다. 12월 중순부터 출근하세요"


세상에. 첫 번째 면접에서 바로 합격한다고???






와이프가 새 직장에 출근한 지도 벌써 세 달이 지났다. 의사소통이 잘 안되고 공격적인 아이들이 많아 처음엔 멘붕이 오기도 하고, 때리거나 물어뜯으려는 아이들에 대처하느라 고생하기도 했지만 이런 실전 경험들과 각종 트레이닝을 통해 와이프의 아이 다루는 기술이 부쩍 좋아진 게 내 눈으로도 보일 정도다. 센터 내의 다양한 아이들을 경험하면서 태민이처럼 명랑한 성격과 공격성 없는 태도를 가진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과 어울리며 영어도 늘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다 보니 체력도 부쩍 좋아져서 일상에서 피곤하다는 말도 많이 줄어든 건 덤이다. 하는 일에 비해 소득은 크지 않아도 우리 가족의 향후 먹거리를 위한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니 이 또한 불평할 일은 아니다.


일이 잘 풀리려면 이렇게까지도 된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다. 부디 와이프의 새로운 도전이 지금까지처럼 무탈하게 흘러가길.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위해 베푸시는 은혜와 이끄심에 새삼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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