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거의 4-5개월 만에 마무리된 사건을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설렘과 기쁨도 잠시, 아이의 테라피 하나가 속을 썩이기 시작했다. 아들 태민이는 자폐로 인해 언어치료, 작업치료, ABA (Applied Behavioral Analysis) 등 다양한 혜택을 보험으로부터 받아 왔는데, 새 회사의 보험에서 갑자기 ABA에 대한 비용 지급을 거부한 것이다. 가까운 곳에 새 회사의 보험을 받는 ABA 센터가 별로 없어 며칠간 인터넷으로, 전화로 고생해서 괜찮은 곳을 겨우 찾았는데 보험 커버 거부라니 이게 웬 말인가.
전화 통화를 통해 들은 해명은 더 기가 막혔다. 전문의의 진단이 없으니 안된단다. 분명 아이가 4살 때 한국 병원에서 받아온 진단서로 Texas와 Virginia에서 여태껏 자폐 관련 테라피를 잘 받아 왔고, 심지어 올해 초는 뉴욕까지 가서 꽤 유명하다는 Neurologist에게 진단을 받은 서류까지 제출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그동안 받아온 치료와 제공한 서류 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재고를 요청했지만, 상담사는 '우리 회사에서 인정하는 수준의 자세한 리포트가 아니기 때문에 불가하다'며 자기도 리포트가 있어야 reconsideration을 요청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이 동네에서 진단 한번 받으려면 12개월 이상 기다리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닌데 기가 막혔다.
이때 인터넷 게시글에서 본 BBB (Better Business Bureau, 한국의 소비자보호원 비슷한 비영리단체) 생각이 났다. 물품 및 서비스 공급자와의 갈등이 잘 해결되지 않을 때 이곳에 도움을 요청하면 훨씬 해결이 빠르다고 했는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도움 요청을 올리자 정말로 2-3일 만에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니 "우리가 진단 가능한 클리닉을 찾아줄게!"라며 두어 달 후로 예약까지 잡아주기까지. 7년이 넘는 미국 생활 동안 이렇게 적극적인 서비스는 극히 드물었기에 전화를 끊고도 꽤나 얼떨떨했다.
의사와 Zoom으로 만나고, 두 번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마침내 오늘 마지막 Zoom 미팅. 오늘 자폐 진단 보고서를 작성해 주겠다는 의사의 선언을 전해 들었다. "He is very obvious" 그래, 나도 잘 알아요. 결국 이 뻔한 소리가 담길 종이 몇 장을 얻기 위해 우리 가족, 상담원, 의사가 낭비한 시간과 비용이 얼마인지.
어쨌든, 주변에 물어보니 이런 케이스가 드물지 않다고 한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엄격하게 심사하고 추가 서류를 요청하는 동안 비용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우리 부부처럼 깐깐한 소비자가 아니면 '안 되는 건가 보다' 하고 포기할 수도 있으니 왜 그러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낭비되는 비용과 시간, 특히 치료가 필요한 아이의 시간은 과연 누가 책임질런지. 몇 개월 기다림의 종지부가 찍혔음에도 썩 기분이 개운하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