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같은 Medicaid 승인
5살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간 사실상 모태신앙에 가깝던 나임에도 방송이나 주변에서 저런 말을 들을 때면 뭔지 모를 거부감이 적지 않았다.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면 내 희생과 노력은? 너무 가식적인 거 아닌가?? 물론 시험이나 취업 등 인생의 중대사에서는 늘 간절히 기도했고, 잘 될 때마다 감사 기도를 드렸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저 정도까지의 감동이 우러났었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한국에서 살 때 그랬다는 얘기다. 고작 7년 정도인 미국 생활이었지만 한국에서와 달리 내 힘과 능력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랬기에 더욱더 나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기도 하고. 특히 영주권을 받기 전까지 극한으로 힘들던 상황 상황마다 '이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거구나'라는 깨달음에 눈물로 감사하는 순간들이 종종 생겼다. 상황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금전적으로 힘들 때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크고 작게 들어오던 도움, 자폐를 가진 아들 태민이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학교와 지인들로부터 건네지던 유용한 자료들과 치료사 정보들, 팬데믹에 이어진 부동산 광풍 중에서도 좋은 집을 몇 주 만에 계약한 일 등등. 물론 혹자는 '그럴 수도 있지' 혹은 '운이 좋았네'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들을 계속 겪다 보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더 위에 계신 힘의 개입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올해 초 주변의 자폐 자녀를 둔 지인들에게서 CCC plus waiver라는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제도는 버지니아 주정부에서 65세 이상의 요양/간호가 필요한 사람 혹은 그보다 어리더라도 장애가 있어 필요가 인정되는 사람에게 메디케이드 (Medicaid) 보험, 개인 간병, 간호 장비 등의 혜택들을 제공하는 제도이다. 혜택이 크고 예산은 제한되어 있다 보니 자폐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는 승인을 받기가 어려운 추세라고 했는데, 특히 전화 screening에서 질문 몇 개를 던지고 '미안하지만 해당이 안 될 것 같다'라고 거절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들 태민이는 자폐가 있지만 자해나 타인에 대한 공격 등의 심각한 행동은 거의 보이지 않아 사실 지원서를 내고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미국에 살면서 공공서비스로 혜택을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기에 굳이 거짓말까지 하면서 추가 혜택을 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하지만 의외로 전화로 통화한 agent는 여러 가지를 꼼꼼히 묻더니 자신과 다른 담당자가 직접 태민이를 보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고, 실제로 집에 와서 태민이를 체크하고 나에게 이것저것을 질문하는 그들의 태도는 놀랍게도 '이 아이에게 혜택을 꼭 줘야겠다'에 가까웠다.
몇 주 전 담당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사실 Medicaid를 받으려면 미국 시민권자 거나 영주권을 받은 지 5년이 지나야 해. 혹시 영주권은 언제 받았니?"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 이런 거면 미리 물어보지 왜 이제 와서... 영주권을 받은 지 아직 만 3년도 되지 않은 우리에게는 허락할 수 없다는 얘기 아닌가. 주변의 자녀들은 다들 시민권자이니 문제가 없었겠지만 우리에게는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였다. 2022년 초에 영주권을 받았다는 내 말에 담당자는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내가 뭘 할 수 있나 볼게"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미국인들의 "No" 였기에 이야기를 들은 와이프도 3년쯤 후에 다시 신청하자며 입맛을 다셨다. 규정이 있다니 안된다고 해도 이해는 가지만, 만약 승인된다면 적지 않은 유 무형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지난 금요일, 바쁜 일과 중 잠깐 짬을 내서 점심을 사들고 회사로 돌아오는 도중, 전화기에 음성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믿을 수가 없어 몇 번이고 메시지를 다시 들으며 확인해야 했다. 분명히 영주권 취득 후 5년이 지나야 한다는 규정을 담당자가 확인까지 했는데도 이게 된다고? 한국도 아닌 규정과 절차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가슴 한가운데가 따뜻하고 평안해지며 마치 '봐라. 내가 다 알아서 하잖니'라는 음성이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고 냉소적인 나 같은 인간도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면 그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벅찬 눈물이 나오게 된다.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힘든 이민 생활이지만, 이러한 돌보심과 은혜가 있기에 의지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지금의 이런 기억들이 앞으로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하길...
Jesus looked at them and said, 'With man this is impossible, but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Matthew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