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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Oct 07. 2023

장애인은 최저임금 안 줘도 됩니까?

미국 장애인 노동의 이상과 현실

최저임금은 세계 어디서든 민감한 이슈이며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도 최저임금의 인상에 따라 많은 음식점과 카페에서 키오스크, 로봇 등으로 직원들을 대체했고, 미국 몇몇 주에서는 배달 노동자나 패스트푸드점 근무원에게 시간당 $18-$20 (약 2.4-2.7만 원)의 최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기업들의 반발을 사고 한동안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 물론 한국이나 미국이나 최저임금으로 먹고살기 힘든 건 매한가지고 사업주들 또한 이 추세가 반가울 리 없겠지만, '사람을 고용하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지급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최저임금의 존재의의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에 '평등에 관한 법률안' (일명 '차별금지법')이 있어 장애로 인한 고용 배제나 불이익을 금지하는 것처럼 미국에도 '재활법' (Rehabilitation Act), '장애인법' (ADA,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등에서 장애를 가진 개인에 대한 모든 고용상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고용주가 만족할만한 업무 역량을 보여줄 만한 분야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며, 그렇기에 장애인의 천국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에서조차 많은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직업을 구하지 못한다. 미국 노동통계청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장애를 가진 성인 중 21%만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 장애인 성인 10명 중 8명은 집이나 데이케어 센터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가 된다.







Section 14(c) of the Fair Labor Standards Act, 소위 '14C'는 미국 노동부 (US Department of Labor) 내 근로기준국 (Wage and Hour Division)의 허가서를 받은 고용주가 '업무 생산성에 영향을 주는'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최저임금 미만의 시급을 제공할 수 있게 허용하는 규정이다. 


앞의 법들에서 장애로 차별하지 말라고 해 놓고 이런 법은 왜 만든 것일까? 14C는 전쟁과 대공황 후 많은 상이군인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장애인법 (ADA)'에서 차별금지의 요건을 '본질적인 직무를 수행 가능한 경우'로 제한한 것과 반대로, '업무 생산성에 영향을 주는' 장애가 있을 경우 14C는 허가받은 고용주에게 합법적으로 장애인들을 최저임금 미만으로 고용할 권리를 준다.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의 경우 옷가게 점원이나 식당 서버 등의 직업을 가지기는 어렵겠지만, 대신 다른 이들보다 저렴한 임금을 받고 일할 의사가 있다면 어느 가게에서든 계산대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자폐 등 지적장애가 있어 고객 응대 업무를 맡기 어려운 사람에게 간단한 상품 정리 및 청소 등을 맡길 수도 있다.


이렇다 보니 이들의 시급은 충격적으로 낮다. 미국 노동부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14C 적용 기업에서 일하는 장애인 중 약 14%만이 최저임금 이상을 받았으며, 대부분은 $3.5 (약 4천 원)도 안 되는 시급으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유명 비영리단체인 Association of People Supporting Employment First (APSE)는 해당 법규를 무효화하고 추가적인 교육과 정책 변화를 통해 모든 장애인들을 노동시장에 포함시켜 적절한 임금을 받게 해야 한다는 "Employment First"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10개가 넘는 주들이 이미 14C를 무효화하는 법령을 통과시키거나 혹은 절차를 진행 중이다.






"역시 미국! 선진국은 달라!"를 외치기엔 나도 여기 짬밥을 꽤나 먹어서일까? 어제 라디오를 통해 APSE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땐 기쁘고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이는 점차 찜찜함으로 바뀌어갔다. 물론 "Employment First"가 계획된 대로 진행되어 장애인들이, 특히 우리 아들 태민이가 앞으로 사회 참여하는 길이 쉬워지고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바랄 게 없겠지만 몇몇 현실적인 문제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짚어야 할 점은 장애인을 고용할 경우 그들을 관리감독하거나 도와줄 추가인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사업체 입장에서는 비용이라는 것이다. 추가적인 교육과 재정지원으로 극복될만한 장애를 가진 경우는 차라리 행운이며, 중등도 이상의 장애를 가진 경우는 대부분 평생 일터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렇다 보니 고용주 입장에서는 일반인 대신 신경을 더 써야 할 인력을 채용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다. 지금도 성인 자폐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들의 사회 참여를 위해 동네 슈퍼마켓에 가서 '내가 옆에서 다 보조할 테니 아이에게 자리를 달라'라고 읍소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장애인 및 부모가 "Employment First"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미국에서 장애인 등록을 할 경우 생활비 보조 등의 혜택이 있지만 결코 넉넉하지는 않기 때문에, 많은 장애인들과 부모들은 장애인 고용 상황이 개선되고 더 나은 임금을 받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예를 들어 내가 사는 버지니아의 Fairfax 지역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고소득 지역이라 많은 장애인 부모들이 자녀의 미래를 위한 충분한 자금을 가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자녀가 시간당 얼마를 버느냐보다는 아이의 자긍심 충족과 사회 참여의 가능성이 그들에겐 훨씬 중요하다. 만약 "Employment First"로 인해 장애인 최저임금 지급이 강제되고 이로 인해 기업들이 장애인 고용을 회피하게 된다면? Employment First의 선의가 오히려 그들에게는 독이 된다. 또한 심한 육체적/정신적 장애가 있어 제삼자의 감독 및 보조 없이는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는 위협이 되는데, 어떠한 법률적, 재정적, 교육적 지원이 있더라도 이들이 일반인들과 경쟁하여 취업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임금이 똑같다면 누가 이들을 고용하려 하겠는가? 


14C 관련 기사에 달린 한 장애인 부모의 댓글. 14C를 통해 본인의 자녀가 혜택을 입었다고 이야기하면서 해당 제도를 없애려는 단체와 정치인들을 성토하고 있다. 




FairEqualRight


전문가도 아니고 장애인 부모로서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도 않아 의견을 내기가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이슈가 Black and White 식의 해법으로 해결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공정한 게 꼭 옳은 것도 아니고, 똑같이 하는 것이 공정하지도 옳지도 않은 경우가 세상에는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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