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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Nov 03. 2023

브런치가 이어준 두브레인과의 인연

재작년 겨울이었다. 우리 가정을 지난하게 괴롭히던 신분 문제가 풀려가고 있어 날씨는 추워도 마음만은 포근하던 그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브런치를 통한 제안이 이메일로 들어와 있었다. 한국에서 자폐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이 종종 미국 생활에 대해 질문하곤 했는데, 비슷한 내용이 아닐까 짐작하며 이메일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내용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본인을 서울대 경영학과 8년 후배라고 소개한 Y는 발달지연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과 테라피 플랫폼을 미국에서 준비 중이라 했다. 미국에 거주 중인 한인 자폐아동 부모님들을 인터뷰하던 중 나의 브런치를 소개받아 읽고 연락했다며, 한번 통화하면서 조언을 얻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한창 올리던 20-21년은 말 그대로 인생의 바닥을 치던 시기라 자폐 아동 양육, 미국 생활, 혹은 인생 자체에 대한 어두운 감정과 생각을 날 것 그대로 올리곤 했었고, 그래서인지 '브런치 보고 연락했소'라는 말이 고마우면서도 꽤나 부끄러웠다. 하지만 자폐인들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런 게 무슨 상관이랴?


일주일쯤 후, 나와 와이프, Y, 그리고 Y의 동료 두 명과 함께 한 시간가량 Zoom 미팅을 가졌다. 초면이라 간단하게 자기소개로 미팅을 시작했는데, Y가 두브레인의 대표라는 걸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 난 8년 후배라길래 끽해야 대리급일줄 알았지..). 이 회사에 대해 처음 들어보신 분들에게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두브레인은 모바일 앱 및 행동치료 프로그램 제공 등을 통해 전 세계의 발달장애 아동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미국에서의 자폐 아동 양육, 학교의 장애아동 지원, 각종 사립 테라피 센터, 미국의 건강 보험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들을 해 왔고, 이들의 선한 인상과 열정에 탄복한 나와 아내는 미팅이 끝난 후 '선한 청년들이네.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영주권을 받고, 집을 사서 이사하고, 와이프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아이를 위해 다양한 치료와 운동을 시도하다 보니 어느새 2년이 훌쩍 지났다. 간간히 생각나서 구글과 네이버를 찾아볼 때마다 두브레인은 점점 더 성장해 가는 게 보였고. 한 달쯤 전, 카카오톡을 통해 Y의 안부인사가 왔고, 서로 근황을 묻던 중 Y가 조만간 뉴욕으로 사업상 출장을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 오는 길에 DC도 한번 들르시죠! DC로 입국해서 뉴욕에서 출국하시면 되겠네요. 여기서 뉴욕까지 가깝습니다
Y: 좋습니다. 혹시 Eric의 친구들과 친구 부모님들을 다 같이 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타향살이를 하다 보면 고국에서 오는 손님은 반갑기 마련이다. 우리와 같은 아픔을 가진 발달지연 아동 가정들을 돕는 귀한 손님이라면 더더욱. 아내는 신이 나서 친하게 지내는 부모들에게 상황을 알렸고, Y가 방문하는 날 저녁에 열명이 넘는 아이와 부모님들이 우리 집에서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10월 하순의 토요일, 2년 만에 다시 만난 Y는 여전히 선하고 에너지가 충만한 느낌이었다. 사실상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자폐'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별다른 어색함도 주저함도 없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진솔하게 대화하고 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있었는데, 내향적인 성격이라 사람과 친해지기 어려워하는 나에겐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ABA 업계에 종사하는 아내도 미국 테라피 센터 및 치료 경험 등을 나누고 Y가 진행 중인 다양한 프로젝트에 대해 들으면서 금세 친해지는 모습이었고.     


드디어 저녁.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난 후, 아내는 다양한 게임을 통해 아이들 간의 social interaction을 유도했다. 그동안 Y는 아이들의 활동을 관찰하고 부모님들에게 두브레인이 어떤 서비스를 하는지 답변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냈다. 모임이 끝날 무렵, 인심 좋게 모든 가정에게 두브레인 서비스 1년 체험권을 무료로 선물한 Y의 호의 덕에 기분 좋게 주말 저녁을 마무리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즐거운 식사와 플레이타임



브런치는 나의 일기장이자 나이테일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려운 순간을 버티려, 혹은 감사한 순간을 잊지 않으려 남긴 글이 미국 서부의 누군가에게 읽히고, 이를 통해 Y와 이어져 장애 아동 육아의 여정을 함께할 귀한 친구까지 생기다니 놀랍고 감사하다. 나 또한 브런치를 통해 누군가와 이어져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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