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마음 한편에서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태민이가 이제 곧 사춘기가 오겠구나. 아니, 이미 왔을지도?’
방 안에서 혼자 있으려 하고, 하기 싫은 일이 생기면 예전보다 훨씬 강하게 반대를 표현하며 자기주장을 하는 날이 점점 늘었다. 간식을 주면 예전처럼 식탁에 앉지 않고, 그릇째 들고 지하 소파에 앉아 혼자 먹기도 한다. 조금 서운하긴 해도 '아, 그래. 이게 성장이지' 하며 받아들였다. 자폐가 있더라도 아이가 자라면서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이렇게 부딪히고 지나가면서 더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물론 아이가 꽥꽥 소리를 내며 반항하는 게 심해질 때면 “너 강아지냐? 왜 멍멍이 소리를 내?” 하며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 말을 너무 자주 들은 탓인지, 태민이는 본인이 소리를 지른 뒤 “멍멍이 소리 하지 마”라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 아니, 그게 안 좋은 거라는 걸 알면 그냥 안 하면 안될까???).
그런데 지난주부터 한숨이 절로 나오는 순간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항상 웃고 다니던 아이가 무표정하거나 짜증 섞인 얼굴로 집안을 서성인다. 몸을 앞뒤로 흔들고, 같은 공간을 왔다 갔다 하며 계속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띄니 뭔가 이상하다는 걸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가장 힘든 시간은, 아이가 잠자리에 누운 이후부터다. 눈은 이미 반쯤 감겨 있고, 누가 봐도 피곤한데 그 순간부터 이상한 소리와 움직임이 시작된다.
“칵! 하악!”
마치 고양이가 하악질 하는 것 같은 소리로 옆에서 자던 사람을 깨우다가, 졸린 눈으로 얼굴과 상체를 긁어댄다. 손톱자국이 남을 만큼 세게 긁어서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남는다. 간신히 선잠이 들었다 싶으면 벌떡 일어나 집안을 돌아다닌다. 결국 그런 밤은 나도 와이프도 아이도 모두 잠을 설칠 수밖에. 그 밤, 다시 잠들려 뒤척이다 문득 ‘강아지에 이어 이번엔 고양이냐…’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이 상황에서 웃기지도 않는, 그마저도 허탈해서 금세 사라져 버리는 자조.
올해 8월에 중학교로 진학한 이후로는 걱정했던 것보다 잘 적응하는 모습에 사실 마음을 좀 놓고 있었다. 물론 몇 주 전부터 특정 교사들에게 침을 뱉는 행동이 관찰되면서 우리 부부 둘 다 더욱 예민해져 있었지만, 데이터를 모으고 학교와 상의하며 문제 행동을 교정하려 노력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런 큰 변화가 한꺼번에 밀려오니, 마음이 버티질 못한다.
“자폐가 있는데 이 정도면 감사한 거지”라고 스스로를 타일러 보다가도, ‘이미 자폐라는 큰 짐 하나 안고 가는 중인데, 사춘기 같은 건 좀 부드럽게 넘어갈 수는 없나’ 하는 억울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른다. 계속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어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큰 퇴행이나 변화는 마음을 철저히 무너뜨린다.
“삶은 고통이다.”
“다들 각자의 짐을 지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머리로는 안다. 실제로도 아이를 키우며 크고 작은 어려운 순간들을 흘려보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커다란 변화들을 겪어낼 때마다 과거의 모든 경험들이 숨을 멈춘다. 이렇게 버둥거리는 삶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고통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