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에 처음 온 “엄마, 이거 봐"

by Sol Kim

“Hey, look at this.”


엄마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아들 태민이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쥐어져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이 뒤섞인 낙서 같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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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이었다. 태민이가 누군가에게 자기를 봐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던가? 게다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그려서 가지고 오다니?


놀라움과 충격을 애써 갈무리하고 “이게 뭐야?” 묻자 태민이는 아기상어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기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설명하기 시작한다.


“아기상어 yellow… 엄마상어 pink…”






세상 대부분의 부모에게는 너무나 흔한 일이다. 아이가 두세 돌이 될 즈음부터 끝도 없이 이어지는 “엄마 봐봐!” 하는 요구에 금세 진저리가 나는 것이 보통이겠지.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었다. 자폐를 가지고 태어난 태민이는 손가락 등의 소근육이 약하기 때문에 글자 쓰기, 그림 그리기, 단추 채우기 같은 일을 늘 버거워했다. 어릴 때부터 Occupation Therapy (작업치료)를 꾸준히 시켜도 발달이 더뎠고, 우리 부부는 결국 이런 일들을 ‘해야 하는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손글씨 대신 타이핑을 하면 되고, 그림은 그리지 않으면 되니까. 여기에 부을 노력과 비용을 차라리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영역에 투자하는 것이 아이에게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더욱,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림을 그렸다는 것도 그걸 들고 와서 자랑한 것도 현실 같지가 않다.


나는 늘 ‘언젠가’만 바라보고 산다. 언젠가 말이 트이면 좋을 텐데, 언젠가 친구가 생기면 좋을 텐데, 언젠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데 가끔은 이런 순간이 아무런 예고 없이 선물처럼 온다.


정말, 오래 살고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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