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던 지난 주말 오후 포토맥 강을 따라 걸었다. 유모차를 끄는 부부, 개를 데리고 나온 노인, 달리기 하는 사람들. 그중엔 휠체어를 탄 사람도 자폐인처럼 보이는 덩치 큰 젊은이도 함께 있었다. 젊은 친구가 손을 흔들며 열심히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특별한 눈길로 쳐다보지 않고, 상관하지도 않고, 그냥 다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주말 오후를 걸었다.
그 풍경을 보다가 와이프가 예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는 한국에 오면 애를 데리고 식당에 갈 때마다 긴장이 돼. 미국에선 단 한 번도 안 그랬는데"
아이가 낄낄대거나 소리를 칠 때 여지없이 꽂히는 의아해하는 혹은 짜증 내는 시선들
반면 같은 상황에서도 부드럽게 시선을 돌리거나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사람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향유할 수만 있어도 굳이 이민의 험난한 길을 택하진 않았으련만...
고대하던 고국 방문임에도 여전히 많은 순간, 나는 긴장하며 주변 눈치를 살피게 되더라.
어제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봤다. 지적장애인과 자폐인이 출연하는 소개팅 예능 프로그램 '몽글상담소' 얘기에 댓글이 수십 개 달려 있었다.
"지적장애는 애 낳으면 안 된다.", "쟤들끼리 애 낳으면 결국 우리 책임 아니냐", "저런 거 왜 하냐"
장애인과 집시를 비롯한 소수자를 말살하려던 히틀러도 아니고 그냥 현실 속 한국의 장삼이사들의 발언이다. 심지어 몇몇은 꽤 길고 논리적이었다. '장애인도 결혼할 자유는 있다. 그런데 장애 아이가 태어날 경우 그 책임을 사회 전체가 져야 하는가'
미국도 지금 좋은 상황은 아니다. 이번 정권 들어서 복지 및 교육 예산이 대폭 감소되었고, 특정 계층 및 소수자를 배척하는 발언들이 여과 없이 뉴스에 자주 실린다. 그럼에도, 최소한 아직까지는, 일상 속 풍경은 여전히 평화롭고 안전하다. 왜일까.
와이프와 나의 결론은 같다. 결국 자주 봐야 한다는 거다. 일상에서 함께 있어야 상태와 필요를 알게 되고 서로를 용인할 수 있게 된다. 낯선 게 무섭고, 익숙한 건 덜 무섭다. 하지만 한국은 인프라든 문화든 장애인이 밖으로 나와 같이 살아가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그러니 장애인이 잘 보이지 않고 (어떤 미국인의 '한국은 장애인이 없는 나라인 줄 알았어요'라는 말처럼...), 안 보이니까 사람들은 계속 장애인을 불편해하고 상관하고 싶지 않아 하며, 장애인들은 이걸 견디기 힘들어 결국 나오지 못하게 된다.
'왜 내가 저 사람을 책임져야 하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싸우기보다는 조용히 사라지는 쪽을 택했다.
나는 태민이를 책임져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눈치 보지 않고 같은 식당에 있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