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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leap Mar 16. 2016

어떤 대화.

길든 짧든 모든 대화는 처음 십분의 반복이다.

흔히 사람을 묘사할 때 '양파같다', '감자같다'같은 말을 한다. 그런 식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달걀같은 사람이다.

단단한 겉껍질이 있어서 겉에서 보기엔 날달걀인지 삶은 달걀인지조차 잘 모르겠고, 막상 까보면 속껍질이 은근하게 들러붙어 안으로 들어가는 걸 막는다.

그것까지 잘 제거해도 흰자의 세상에 파묻혀 허우적거리다보면 아 내가 이 사람을 다 알았구나 착각하게 된다. 방향을 잘 잡고 조심히 들어가 노른자까지 가 닿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가 그리 많지 않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관심도 별로없는데 왜 인간은 계속해서 타인과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걸까. 대화를 분류해보면 그 이유가 보인다. 당신은 어떤 대화를 하고 싶은가, 또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가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얘기를 한 20분 정도 하다 보면 그 사람과의 대화를 정의할 수 있게 된다. 일이십분 정도면 거기서 대화를 그만 해도, 앞으로 몇 시간을 더 떠든다 해도, 그 대화는 사실상 앞서 보낸 일이십분의 무한 반복이다.

대화는 크게 몇 가지 기준으로 구분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내 이야기를 하느냐 네 이야기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나와 대화하는 상대방을 가리키도록 하자. 거의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 또는 내 얘기를 계속 물어보고 내가 얘기를 꺼낼 수 있게 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서 다시 세분화해볼 수 있는데, 자기 얘기를 하는 데 있어서 그저 자기에게 있었던 일이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을 누군가에게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게 대화를 하는 이유인 경우다. 이 때 단순히 얘기를 하기만 하고 상대방이 어느 정도 듣는 반응을 보이기만 하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방의 감정적인 공감을 받지 못하면 못 참는 경우가 있다. 듣는 사람에게 무언의 강요를 해서 체력적 소모까지 이끌어내는 진정한 파이터 스타일이다.
다른 경우는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의 상황,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어하는 경우다. 자신의 감정, 생각에 똑같이 공감하고 진동하길 강요하지 않고, 정말 상대방의 생각을 듣고 싶어하는 경우다. 이런 사람은 내 얘기를 하는 것과 네 얘기를 하는 것의 경계에 있는 경우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다음 네 얘기를 하는 사람에도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정말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부터 출발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얘기를 들어주고자 하는 경우다. '네'가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면 굳이 들으려고 하지 않고 넘어간다. 다른 경우는 마치 자기계발서같은 대화를 하는 사람이다. 결국은 내 얘기로 만들기 위해 상대방을 마구 헤집고 파낸다. 어떻게든 말을 하라고 다그치고, 하나의 문장도 여러 도막으로 잘라 자기가 원하는 단어만 꿀꺽 삼키고 나머지는 까만 봉투에 싸서 즉시 버린다. 말을 하고 나면 마치 알몸수색을 당한 기분이 든다. 공항 검색대에서 수색견으로 일하면 성공할 것 같다.
또 대화는 그 색깔로 분류를 나눠볼 수 있다. 대화의 색깔이라고 표현한 것은 대화의 내용이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온통 부정적인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고, 긍정적인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감정이 딱히 들어있지 않은 객관적이고 중성적인 얘기를 할 수도 있다. 부정적인 얘기를 하는 경우는 타인을 비난하는 경우, 흔히 '뒷담깐다'고 하는 대화를 나누는 경우다. 또 다른 경우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타인의 삶과 비교하면서-이 때 비교대상이 듣는 사람이라면 정말 괴롭기 그지없다-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비참하고 제일 힘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열심히 착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런 대화는 전염성이 강해서 몇 번 듣는 사람으로 대화에 참여하고 나면 쉽게 그런 태도가 자신에게도 배어들게 된다. 정말 잘 번지고, 잘 안 지워지는 물감으로 색칠을 하는 셈이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늘 좋은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얘기를 끊임없이 끄집어내느라 상대방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보다 결국 모든 일을 덮어버리자, 는 태도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사람이 있다.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조이(기쁨이)와 같은 사람이다. 분명 긍정파워로 뭐든 할 수 있을 것처럼 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꾸만 가리고 덮어두려고만 한다. 이대로 가다간 착한건지 멍청한건지, 소리 듣기 딱 좋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화 상대는 널뛰기같은 대화를 하는 사람이다. 널뛰기는 내가 뛰고, 그 다음 네가 뛰어야 계속할 수 있다. 널뛰기를 할 때는 시소처럼 두 사람이 함부로 가까워져서도 안되고, 널 밖으로 나가서는 절대 안된다. 널 밖으로 한 사람이 나가버리면 상대방이 크게 다치고 만다. 속도도 맘대로 조절할 수 없다. 적절한 속도로, 적절한 거리에서, 두 사람이 동등한 무게로 대화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내가 얘기할 땐 주의깊게 들어주되, 너무 오버하지 않아서 내 얘기와 네 얘기가 한 번에 적절한 길이만큼씩만 나오는 것. 그리고 결론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서로로 인해 교훈을 '깨닫게 되는', '얻게 되는'대화다.

그리고 굳이 '널뛰기'라고 표현한 이유도 있다. 이 주제 저 주제 온갖 연결되지 않아 보이는 소재들을 널 뛰듯이 갖다 붙이며 대화가 이어지고 대화가 끝날 즈음에는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실과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실로 꿰맨 예쁜 패치워크가 되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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