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의 계획을 계획한다는 것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였는지 알 수 없지만, 한 번은 그애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미팅이나 어떤 약속이 있을 때 그 시간에 딱 맞춰서 나타나는 사람이 일을 잘 하는 사람이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자신은 미팅이나 약속이 있으면 10분 전에는 미리 가있는데, 다니던 회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확한 그 시각에 맞춰서 움직이고 나타나곤 했다며 그런 말을 했다.
그애의 말에서 항상 어떤 깊이를 찾기는 힘들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라던지 무슨 생각으로부터 저런 말이 나온 거지? 라고 궁금해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그애는 자기 안을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 그런 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회사를 다니면서 지방 공장에 출장을 갈 일이 생겼다. 처음 가는 것이었고, 가서 어떤 업무가 있는 게 아니라 선임이 일이 있어 내려가는데 가는 김에 따라가보는 것이었다.
공장에 가기 위해 안내가 필요했지만 아무 안내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일정에 대해서도 명확히 전달받지 못했다.
단숨에 다녀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버스를 오래오래 타고 택시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하고, 시간을 정해놓고 방문해야 하며, 가서 해야 할 일도 체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가기 전날(하필 또 일요일이었다)까지 연락이 없어서 물어본 말에도 한참 뒤에나 갈지 말지 알 수 없다는 식의 답, 거의 가지 않게 될 거라는 식의 답이 겨우 돌아왔다.
아무 준비 없이 갔는데 갑작스레 월요일 오전 중에 늦게 출근한 그 선임은 출발을 해야한다고 했다. 아무 것도 챙기지 못한 채로 따라가게 되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공장에 갈 때 해서는 안 될 복장(통이 넓은 바지)을 하고 있었고, 갈아입을 옷조차 준비하지 않았으며, 모르는 도시에 가서 하루를 자고 와야하는데 숙소도 없었으며 가족에게 오늘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갑작스레 출장을 간다고 말해야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일정을 체크하고 준비가 필요한 상황에 대해 대비를 시키고, 대체계획과 대체계획의 대체계획을 세워두었을 것이다.
처음 하는 일도 아니었고, 절차를 잘 숙지하고 있었으며, 아무 목적 없이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따라가야 할 신입이 있었다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또, 반드시 필요한 목적이 무엇인지 구분하고 그것만을 달성하기 위한 선택과 행동을 했을 것이다.
나는 약속시간에 딱 맞춰 나타나는 사람이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거나 주위를 먼저 확인해야하는 등 다른 목적이 없는 한 절대 미리 도착하지 않는다.
혹시 늦을 것 같으면 상대방이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그 이전에 미리 연락하려고 한다. 그러지 못하는 돌발상황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평범한 사람 중에서도 성격이 급하고 실수가 좀 많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10분 15분 일찍 도착한다는 그애는, 정작 중요한 상황-상대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30분 1시간도 늦기 일쑤였다. 상대방에게 자신이 기대고 의지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 상대방에 대해서는 한없이 기대어버리는 사람이었다.
시간을 지키는 것도, 바뀌어버린 일정에 대처하는 것도.
그리고 그애는 말했다. 자신은 늦는 것이 너무 싫고, 그로 인해서 불안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항상 10분 이상 일찍 간다고. 30분에서 1시간까지도 일찍 움직인다고.
알았다, 고 말했다.
본인이 느끼는 것이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해주어도 나밖에 깨닫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럴 때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와닿지 않는 말이란.
그런 것이다. 상대에게 도무지 가닿지 않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떠들면, 그것은 잘난척이고 잔소리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상대에게 가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속 얘기한다면, 그것은 애쓰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가닿지 않음을 알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