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오피스 : Dream Eater (9)
'D-Archive'가 한 줄씩 채워질수록 지우의 사고는 냉정해졌다.
분노는 계획이 되었고, 복수는 전략이 되었다.
하지만 혼자서는 이길 수 없었다.
'드림이터들은 언제나 조직과 시스템의 비호를 받고 있었으니까.'
그는 동료가 필요했다. 먹잇감을 나누는 동료가 아닌, 함께 사냥에 나설 동료.
첫 번째 목표는 늘 지친 얼굴로 회의실 구석을 지키던 최 차장이었다.
그는 오 부장의 오랜 동료였고, 모든 것을 알고도 침묵하는 방관자였다.
지우는 최 차장에게 다가가 조용히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차장님, 작년에 진행했던 '알파 테스트' 비용 처리 말입니다. 박준서 대리가 보고한 것과 실제 집행 내역에 차이가 좀 있던데,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지우는 박준서가 중간에서 테스트 비용을 일부 횡령한 정황을 포착한 'D-Archive'의 기록을 툭 던졌다.
최 차장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그는 박준서의 비리를 알고 있었지만, 오 부장의 비호 아래 묵인해왔던 것이다.
"자네... 뭘 어쩌자는 건가."
"바로잡아야죠. 차장님께서도 더는 부끄러운 침묵을 하고 싶진 않으실 것 같아서요."
최 차장은 한참 동안 지우를 바라보다,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 오 부장 컴퓨터 비번, 매 분기 바뀌네. 이번 분기 암호는 아들내미 생일이지."
그는 그렇게 첫 번째 '드림 키퍼'가 되었다. 내부 정보와 드림이터의 약점을 제공하는 '감시자'였다.
두 번째는 마케팅팀의 윤 과장이었다.
실력은 출중하지만 오 부장과 사사건건 부딪히던 인물.
지우는 그에게 업무적인 제안으로 접근했다.
"과장님, 저희가 폐기 처리 중인 구형 서버에서 과거 사용자 로그를 분석해 보니, 특정 연령대에서 과장님 팀이 기획 중인 서비스와 유사한 니즈가 폭발했던 시점이 있었습니다. 이 데이터를 활용하시면, 기획안에 훨씬 강력한 명분을 실어주실 수 있을 겁니다."
지우가 내민 데이터는 오 부장이 '쓸데없는 짓'이라며 폐기시킨 자료에서 캐낸 보석이었다.
윤 과장은 데이터의 가치를 즉시 알아보았다.
"조건이 뭔가?"
"제 이름은 빼주십시오. 대신, 오 부장님이 '비전 프로젝트'의 허황된 예측치를 발표할 때, 이 리얼 데이터로 카운터를 날려주십시오."
윤 과장의 입가에 흥미로운 미소가 번졌다. 그는 기꺼이 '드림 키퍼스'의 '스나이퍼'가 되기로 했다.
마지막 멤버는 신입사원 김소희였다.
지우는 풀 죽어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의 '마음링크' 초기 기획안을 보여주었다.
"소희 씨 아이디어, 틀린 게 아니었어요. 너무 빨랐을 뿐이지. 그리고 그걸 보여주는 방식이 서툴렀던 거고.
좋은 아이디어는 지켜야 해요. 지키려면 강해져야 하고."
지우는 그녀에게 데이터 분석 방법과 논리적인 보고서 작성법을 가르쳤다.
김소희는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였고, 누구보다 열정적인 '데이터 분석가'로 성장했다.
그렇게 비밀스러운 '드림 키퍼스'가 결성되었다.
그들은 점심시간, 혹은 모두가 퇴근한 늦은 밤, 텅 빈 회의실에 모여 작전을 짰다.
"단순 폭로는 안 됩니다. 오 부장은 꼬리 자르기의 명수예요. 증거를 터뜨려도 박준서 선에서 막히거나, '팀의 성과를 위한 과욕' 정도로 포장될 겁니다." 최 차장이 말했다.
"맞아요. 우리가 저들을 심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저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회사의 성장을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인지 모두의 눈앞에 증명할 수는 있죠." 윤 과장이 맞받아쳤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안 해요." 김소희의 눈이 빛났다.
마침내 지우가 최종 계획을 밝혔다.
"우리는 '트로이의 목마'를 만들 겁니다."
그들의 계획은 단순 폭로가 아니었다.
오 부장이 회사의 영웅으로 올라서려는 가장 중요한 무대, 다음 분기 타운홀 미팅에서 그가 쏜 화살이 스스로의 심장을 꿰뚫게 만드는 것.
그들은 오 부장의 '비전 프로젝트'를 돕는다는 명분 아래, 새로운 데이터 시각화 분석 툴, 코드네임 '프로젝트 라이트하우스(Lighthouse)' 개발에 착수했다.
최 차장은 오 부장 몰래 서버 접근 권한을 열어주었고, 김소희는 밤새 데이터를 분석해 입력했으며, 윤 과장은 '라이트하우스'가 공개될 무대의 판을 짰다.
'라이트하우스'는 겉보기에는 '비전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는 화려한 툴이었다.
하지만 그 핵심에는,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모든 데이터의 허와 실을 드러내고, 진짜 시장의 기회가 어디에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진실의 스위치'가 숨겨져 있었다.
드림이터들을 향한 가장 완벽한 카운터 펀치가, 조용하고 은밀하게, 그러나 치명적으로 준비되고 있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