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그 시절 러브스토리 <가요동화> vol.3

by 공감디렉터J

추억 속 노랫말에 담긴 상상 속 러브스토리.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1988년, 서울 어딘가의 조용한 카페.

창밖으로 내리는 가을비가 유리창에 흩뿌려지고, 실내는 은은한 재즈 선율로 가득하다.


민호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구석자리에 앉았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한 광고회사에서의 하루는 언제나 그를 지치게 한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그는 문득 이 만남이 옳은지 의문이 든다. 수민과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4년 동안 가까운 친구로 지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졸업 후 자연스레 소원해진 관계를 다시 이어붙이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때, 카페 문이 열리고 수민이 들어온다.

비에 살짝 젖은 머리카락, 늘 그랬듯 수수한 차림이지만 민호의 시선은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오래 기다렸어요?" 수민이 테이블에 앉으며 묻는다.

"아니, 방금 왔어." 민호는 거짓말을 한다. 그는 이미 30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찻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차츰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진다.

수민은 출판사에서 일하며 겪는 소소한 일상을, 민호는 광고회사에서의 고단한 나날들을 이야기한다.


"요즘도 음악 들어?" 민호가 묻는다.

수민의 눈이 반짝인다. "당연하지. 음악이 없으면 살 수 없어."


민호는 그녀의 손끝에 시선이 머문다. 수민은 언제나처럼 찻잔을 매만지며 이야기한다.

그 작은 습관이 민호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그리웠던 모습이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카페의 손님들은 하나둘 빠져나간다.

그들만의 시간이 흐르는 공간에서, 민호는 문득 대학 시절 그녀를 좋아했던 마음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때는 감히 고백하지 못했다. 자신의 진심이 그들의 소중한 우정을 망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가끔 생각해," 수민이 갑자기 말한다. "우리가 졸업하고 각자 길을 갔을 때, 네가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잖아. 그때 하지 못한 말... 뭐였어?"

민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그날, 그는 수민에게 고백하려 했지만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냥... 앞으로도 연락하며 지내자는 말이었어." 민호는 또다시 진실을 숨긴다.

수민은 잠시 민호의 눈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짓는다. 그 눈빛에는 무언가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카페에 흐르던 음악이 바뀐다. 오석준의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이다. 수민이 눈을 크게 뜨며 말한다.

"이 노래, 기억나? 대학 축제 때 같이 들었던..."

민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날 밤, 축제의 열기가 식어가는 캠퍼스에서 그들은 이 노래를 들으며 별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던 그 시간이 민호에게는 가장 소중한 기억이었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비는 그쳤다. 그들은 카페를 나와 한강변을 걷는다.

도시의 불빛이 강물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풍경이 마치 그들의 흔들리는 마음 같다.


"민호야," 수민이 걸음을 멈추고 말한다. "사실 오늘 만나자고 한 이유가 있어."

민호의 가슴이 조여온다.

"다음 달에 런던으로 떠나. 회사에서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났어. 2년 계약이야."

순간 민호의 세계가 멈춘 것 같다. 다시 그녀를 잃게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축하해," 그는 간신히 말을 잇는다. "네가 원하던 거잖아."


수민은 잠시 침묵했다가 묻는다. "기다려줄 수 있어?"

민호는 놀라 그녀를 바라본다. 수민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대학 때부터 널 좋아했어. 하지만 네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렸는데... 그 말이 끝내 오지 않아서 포기했었어."

민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본다.

모든 시간이 헛되었던 것일까? 서로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면서도 말하지 못했던 그 시간들이 안타깝다.

"나도... 항상 널 좋아했어." 민호는 마침내 숨겨왔던 진심을 고백한다. "그리고 기다릴게. 얼마든지."


한강의 밤바람이 그들의 머리카락을 흩트린다.

수민은 민호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고,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는다.

말없이 믿으면서 오가는 두 마음, 그것이면 충분하다.

강물에 비친 도시의 불빛처럼, 그들의 사랑도 이제야 비로소 빛나기 시작한다.

늦게 찾아온 용기가 만들어낸 시작이다.


그날 밤, 오석준의 노래가 그들의 마음속에 조용히 울려 퍼진다.


"이대로 거짓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대를 사랑해..."


이제 그들에게는 기다림이 있다. 2년이라는 시간과 대서양을 사이에 둔 거리.

하지만 그들은 안다. 진정한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것을...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은 끝나가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다.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노래 / 오석준 (1988.11.10.)


(클릭) https://youtu.be/6IaTCxThOlU?si=R5Fg6DnVzQncwDiP


어둠이 음악사이로 흐르듯 다가오는 밤

찻잔을 매만지는 그대 손끝에 눈길이 멈추어지네

살며시 기대어오는 조그만 그댈 느끼며

달콤한 그숨결은 노래가 되어 귓가에 머물다 가네


그대가 들려준 흔한 주변의 얘기가

내마음 편안하게해

괜시리 부담스런 지난하루 기억들

웃음속에 사라져가네


(후렴)


이대로 거짓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대를 사랑해

말없이 믿으면서 오가는 두마음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간주)


언제나 해맑은 그대 다정한 속삭임

모든것 새롭게하지

어느덧 멈춰버린 우리만의 시간은

찻잔속에 녹아흐르네


(후렴)


말없이 믿으면서 오가는 두마음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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