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일상(7)

7화. 복제된 함정

by 공감디렉터J

자정을 알리는 핸드폰의 희미한 불빛 아래, 김민준은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던 작업을 막 끝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정적을 깨고 날카롭게 울리는 벨 소리.

액정에 뜬 이름은 '박지연'. 이 시간에?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여보세요? 지연아, 무슨 일이야?"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불안정하고 떨리는 숨소리뿐이었다. 곧이어 희미한 목소리가 귓가에 와 닿았다. "민준아... 나야, 지연이..." 목소리는 잔뜩 겁먹어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괜찮아?" 김민준의 목소리에도 긴급함이 묻어났다.

"...집 밖에... 누가 왔어."

"누가? 누구 왔는데?"

"몰라... 문을... 문을 두드려. 자꾸... 열어달래. 이상해..."


지연의 목소리는 떨렸고, 그 사이로 쿵쿵, 하고 문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단순한 방문이 아니었다. 위협적이고 집요한 두드림이었다.

"경찰에 신고했어?"

"아니...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패닉에 빠진 지연의 목소리에서 완전히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김민준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경찰이 오기에는 시간이 걸릴 터였다. 지연의 목소리 상태로 보아, 그녀는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웠다. 그는 순간적인 결단을 내렸다.

"알았어, 지연아. 내 말 잘 들어. 절대 문 열어주지 마. 창문으로 내다보지도 말고, 그냥 문 앞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 알았지?"

"응... 응, 알겠어..." 지연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대답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현관문을 닫고 계단을 향해 내달렸다.

지연의 집까지는 전력 질주하면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밤거리는 한적했고, 그의 발소리만이 아스팔트 위에서 다급하게 울렸다.

그 순간, 하늘을 찢을 듯이 날카롭게 들려오는 비명소리.

끼아아아악!!!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비명.

박지연의 목소리였다.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빌라 건물 입구를 향해, 그리고 지연의 집이 있는 층을 향해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던 그때.

눈앞에 형용할 수 없는 번쩍이는 섬광이 터져 나왔다. 폭발음도, 뜨거움도 아니었다. 순수한 '빛'과 함께 엄청난 충격파가 그를 덮쳤다. 마치 시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기분.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몸의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김민준은 그대로 계단 밑으로 힘없이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어둠.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의 감각과 함께 김민준은 의식을 되찾았다. 손목과 발목에는 굵은 밧줄이 단단히 감겨 있었고, 몸은 기둥에 묶여 움직일 수 없었다. 어두컴컴한 지하 창고 특유의 곰팡이 냄새와 습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어라, 깨어났네?"

낮게 깔린 목소리와 함께 세 개의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그렇게 걱정이 됐어?"

그 목소리에 김민준의 온몸이 굳어버렸다. 분명 박지연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지연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난생 처음 보는 사내의 입에서 너무나 완벽하게 재현된 지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격분과 절망이 뒤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지연이는... 어딨어? 어떻게 한 거야!"


사이렌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김민준에게 성큼 다가섰다.

"하하,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어차피 우리랑 같은 부류니까 솔직하게 얘기할게. 너는... '보이스 피싱' 당한 거야. 지연이는 무사해. 해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안심해도 돼."


'보이스 피싱?'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듯했다. 그토록 필사적으로 달려왔던 이유, 그토록 지연이를 걱정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허탈함과 배신감이 밀려왔다.

사이렌은 김민준의 표정을 즐기듯 천천히 설명했다.

"내 이름은 사이렌. 사람들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모사할 수 있지. 방금 네 여사친 목소리도 내 작품이야."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프린터라고 불러. 뉴스에서 내 얘긴 들었을 거야. 어떤 그림이든 완벽하게 복사해내지."

프린터. 그 이름에 김민준은 순간 번뜩였다. 모네 그림. 아니, 나의 모네 그림 복제품을 다시 복제했다는 뉴스 속 그놈인가?


스피도가 지연의 집을 털다가 우연히 발견한 모네의 복제품을 보고 프린터는 또 다른 능력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김민준을 자신의 범죄조직에 끌어들이기 위해 이런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유인했던 것이다.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김민준은 묶인 채로 세 사람을 노려보았다. 분노로 눈앞이 붉게 타올랐다. "원하는 게 뭐야?!"

"글쎄요." 사이렌이 나긋하지만 차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당신의 능력? 아니면 당신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 아니면... 그냥 우리가 당신보다 강하다는 걸 확인하는 것? 모두 다일 수도 있고."


스피도가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의 몸에서 초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일 때 생기는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인내심이라곤 없어 보이는 성격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길게 하지 마. 능력만 확인하고 처리하든가 하자고. 복사? 해보시지 그래? 네 놈이 그 밧줄을 끊을 수 있을 만큼 내 속도를 복사할 수 있을 것 같아?"


음속 능력자 스피도는 조롱하듯 그의 주위를 빛보다 빠르게 한 바퀴 돌았다.

쉬이이이익-!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찔렀다. 눈으로는 형태조차 분간할 수 없는 아지랑이 같은 잔상만이 남았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스피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에 돌아왔다. 김민준은 그를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그의 능력이 발동하는 순간 방 안을 가득 채운 압력 변화와 머리가 멍해지는 듯한 속도의 파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찰칵.

김민준의 머릿속에서 작게 소리가 울렸다. 마치 카메라 셔터 소리 같았다. 본능적인 감각. 그의 '복사' 능력이 스피도의 초음속 이동 능력의 '일부', 그 순간적인 가속의 '감각'과 '원리'를 어렴풋이 포착했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능력이 발동했다는 사실에 김민준은 속으로 경악했다.

'묶인 상태에서도 복사가 가능하단 말인가?'

사이렌은 이 모든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우린 서로의 능력을 사용해서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어요. 방화를 일으켜서 순식간에 집을 턴다거나, 위조 지폐를 만들거나, 당신이 방금 당했던 것처럼 보이스 피싱을 한다거나..."

그녀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능력을 사용해 방 안의 온갖 소리를 흉내 냈다. 쥐가 갉아먹는 소리,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아까 지연이의 불안한 목소리까지. 소름 끼치도록 완벽한 모사였다.


찰칵.

사이렌의 음성 모사 능력 역시 복사되었다.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게, 마치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처럼. 복사된 스피도의 속도와는 다른, 소리의 파형과 성대 모사의 원리가 머릿속에 새겨졌다. 탈출에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지만, 혼란을 야기하기에는 충분했다.


세 명의 능력자는 김민준이 단지 묶인 채 자신들의 능력 시연을 지켜보며 공포에 질려있는 줄 알았다.

그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은밀하고 폭발적인 '복사' 과정을 눈치챌 리 만무했다.

김민준은 겉으로는 절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차갑게 계산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만했다. 복사 능력자 앞에서 너무나 거리낌 없이 능력을 사용했다. 그것이 그들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스피도가 말을 이었다.

"지난번 봉천동에서 말이야. 너 때문에 미수에 그치고 말았지만, 난 거기서 너와 싸우던 녀석의 격투 기술을 순식간에 복제하는 너를 목격했거든. 네 능력은 쓸모가 많을 것 같아. 우리 조직에 들어와."

형체도 없이 나타나 방화범을 데리고 바람처럼 사라졌던 녀석이 바로 스피도였다. 그날 이미 그는 자신의 정체를 눈치챘던 것이다. 김민준의 심장이 다시 한번 불안감으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자신 외에도 능력자들이 어둠의 세계에서 활개치고 있었고, 이미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눈치채고 검은 마수를 뻗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박지연은? 다른 주변 사람들은?


스피도가 초조하게 말했다. "시간 없어. 끝내자. 조직 합류를 거부한다면... 처리할 수밖에."

사이렌은 마지막 작별 인사라도 하듯, 아까와는 다른, 비극 영화의 주인공 같은 아름답지만 슬픈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바로 그때, 김민준의 눈빛이 변했다. 절망은 사라지고 이글거리는 차가운 결단력이 깃들었다.

그는 더 이상 묶인 먹잇감이 아니었다.

그는 사냥꾼이 던진 미끼를 삼킨 동시에 사냥꾼의 이빨을 복제한 존재였다.

그는 방금 복사한 스피도의 '초음속 가속' 능력을 자신의 신체에, 정확히는 밧줄에 묶인 팔다리에 집중시켰다. 이건 단순한 속도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섬유 조직의 강도를 넘어서는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가속의 원리였다.

"하!" 짧고 강렬한 기합과 함께 김민준의 몸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찰나간 경련했다.

그의 팔다리가, 그를 묶은 밧줄 사이에서 미세하지만 폭발적인 속도로 진동했다. 마치 초고속 진동톱처럼.


스피도는 "뭐, 뭐야?!" 하고 반사적으로 물러섰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경직됐다.

사이렌의 아름다운 노래가 소름 끼치는 불협화음과 함께 끊겼다.

쉬이이이이익-! 파스스스!

마찰열과 함께 밧줄이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지더니, 그의 손목과 발목에서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초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발생시킨 순간적인 진동과 힘이 섬유 조직을 견디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자유가 된 김민준은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몸은 여전히 쑤셨지만, 복사된 스피도의 '순간 가속' 능력 덕분에 평범한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속도로 반응할 수 있었다. 그는 아직 스피도처럼 자유자재로 공간을 이동하지는 못했지만, 폭발적인 첫 움직임에는 충분했다.


스피도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그의 몸이 잔상과 함께 김민준에게 달려들었다. "건방진!"

하지만 김민준은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그의 복사된 능력은 스피도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몸을 틀어 스피도의 첫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동시에 그는 방금 복사한 사이렌의 능력을 사용했다.

"프린터! 뒤!"

김민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너무나 완벽하게 스피도의 목소리였다. 분노와 짜증이 뒤섞인, 스피도 특유의 목소리.

스피도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하며. 프린터 역시 '내 이름이 왜 저기서 나와?' 하는 표정으로 김민준과 스피도를 번갈아 보았다. 그들의 협공이 찰나간 흔들렸다.

그 찰나의 순간, 김민준은 다시 한번 '순간 가속' 능력을 발동했다. 그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지하 창고의 유일한 출구인 문을 향해 전광석화처럼 내달렸다. 좁고 물건으로 가득 찬 지하 창고는 스피도가 최고 속도를 내기 어려웠고, 프린터가 뒤늦게 그의 앞길을 막으려 했지만 김민준은 순간 가속으로 그 틈새를 꿰뚫고 지나갔다.

김민준은 복도 문고리를 잡았다. 그의 손에 잡힌 금속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는 문을 열기 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세 명의 능력자가 혼란과 분노, 그리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덕분에... 좋은 경험했어."


김민준은 이미 복도 끝의 계단을 향해 '순간 가속' 능력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달리고 있었다. 그의 발소리는 점점 더 빠르게 멀어져 갔다.

지하실 문이 쾅 닫히며 세 명의 추격자들은 잠시 주춤했다. 김민준은 계단을 세 개씩 건너뛰며 지상으로 향했다.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뛰었지만, 아드레날린과 복사된 능력의 감각 덕분에 몸은 놀라울 정도로 가벼웠다. 오른발에는 속도의 감각이, 귓가에는 방금 복사한 다양한 목소리의 파형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탈출은 성공적이었다. 그들은 그의 능력이 '관찰'과 '경험'을 통해 발현된다는 것을 몰랐고, 그가 포박된 상태에서도 능력을 복사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오만했다.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며, 가장 위험한 존재에게 스스로 약점을 보여준 것이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김민준은 생각했다. 박지연은 무사하다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자신 외에도 능력자들이 어둠의 세계에서 활개치고 있었고, 이미 그들은 민준의 정체를 눈치채고 검은 마수를 뻗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민준과 그의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하니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위기의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발현된 능력.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고, 몸으로 느낀 능력을 동시에, 그것도 둘 이상을 복사해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은 단순한 복사가 아니었다. 그의 잠재력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폭발하고 있었다.

도망치는 그의 등 뒤로, 그의 특별한 일상은 이제 예측 불가능한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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