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콜렉터 김대리 7화

승리의 대가

by 공감디렉터J

일주일 후, (주)정도기획 영업2팀에 작은 지진이 일어났다.

넥스트유니콘과의 연간 오피스 통합 솔루션 공급 계약이 최종 체결된 것이다. 계약서에 찍힌 금액은 김민석 대리가 지난 4년간 올린 모든 실적을 합친 것보다 컸다.

박팀장은 아침 조회에서 이례적으로 김대리의 이름을 직접 거론했다.


“이번 넥스트유니콘 건은 김대리가 주도해서 이뤄낸 성과다. 다들 본받도록.”


짧은 한마디였지만, 사무실의 권력 지도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던 동료들이 “김대리, 오늘 점심이나 같이 하지?”라며 어깨를 툭툭 쳤고, 에이스 강대리는 보란 듯이 헤드셋을 끼고 아무것도 듣지 않겠다는 듯 모니터만 노려봤다. 가장 큰 변화는 김대리의 통장에 찍힌 두둑한 성과급이었다. 월급의 200%. 그의 인생에서 처음 만져보는 거금이었다.

승리의 대가는 달콤했다. 하지만 김대리의 시선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들어, 며칠째 열어보고 닫기만 반복하던 연락처를 다시 띄웠다.


오한나…

이제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심호흡 한번 하고, 수십 번 고쳐 쓴 메시지를 전송했다.


[한나야, 나 민석이야. 그날은 너무 정신없었네. 시간 괜찮을 때 밥 한번 먹자는 약속, 혹시 아직 유효할까?]

전송 버튼을 누른 손가락이 떨렸다. 몇 분 후, 화면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그럼! 나야 좋지. 이번 주 금요일 저녁 어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는 곧장 인터넷을 켜고 ‘강남 소개팅 장소’,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검색했다. 그리고 큰맘 먹고, 파스타 한 접시에 그의 하루 일당이 날아가는 청담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약속 당일, 김대리는 백화점에서 산 가장 비싼 셔츠를 입고 30분이나 먼저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어색하게 물만 연신 들이켜고 있을 때, 그녀가 나타났다. 화려한 정장이 아닌, 세련된 블라우스에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었지만 그녀에게서는 여전히 다른 세상의 공기가 느껴졌다.


“민석아, 많이 기다렸어?”


어색한 안부와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팔이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럽게 현재의 삶으로 넘어왔다.


“이번에 뉴욕 지사랑 협업하는 글로벌 캠페인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 다음 달엔 또 파리로 출장 가야 하고.”

“와, 글로벌하게 일하는구나. 멋있다.”

“멋있긴. 그냥 시차 적응 못 하는 일개미지 뭐. 너는 요즘 어때? 듣자 하니 최근에 큰 프로젝트 성공했다며?”


그녀가 어떻게 알았을까 잠시 당황했지만, 아마 최정훈 선배를 통해 들었으리라 짐작했다. 김대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넥스트유니콘 건을 최대한 멋지게 포장해서 설명했다. 나름 뿌듯한 성과였지만, 뉴욕과 파리를 오가는 그녀의 스케일 앞에서는 동네 구멍가게의 성공담처럼 들렸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인맥 콜렉터’의 본능이 고개를 들었다. ‘LK그룹 마케팅팀... 우리 회사랑 협업할 만한 부분이 있을까? 어떻게 접근해야 하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인맥 리스트 A+ 등급’으로 분류하려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야. 오늘은 아니야.’


그는 머리를 흔들어 직업적 본능을 지워냈다. 오늘은 (주)정도기획의 김대리가 아닌, 그냥 오한나의 친구 김민석으로 있고 싶었다. 그는 애써 화제를 돌려 그녀의 취미나 요즘 보는 드라마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계산과 전략이 사라진 대화는 의외로 편안하고 즐거웠다.


식사가 끝나고, 김대리는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내밀었다. 한 달치 교통비가 한순간에 사라졌지만, 아깝지 않았다. 레스토랑을 나서며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 민석아. 고마워.”

“나도.”

“있잖아, 가끔 이렇게 만나면 좋겠다. 회사 사람들하고는 못하는 얘기들이 있거든. 다들 뭔가 목적이나 계산을 깔고 대하는 게 버거울 때가 많아.”


그녀의 말은 친근함의 표시였지만, 김대리의 가슴에 보이지 않는 비수가 되어 꽂혔다.

‘목적이나 계산을 깔고 대하는 사람들.’

그건 바로 조금 전까지 자신이 하려던 행동이었고, 지금껏 살아남기 위해 택했던 방식이었다.

그녀의 세상에서 그것은 ‘버거운 일’이었고, 그의 세상에서는 ‘생존 전략’이었다.

택시를 잡아주고 돌아서는 길.

화려한 청담동의 밤거리 한복판에, 그는 다시 혼자였다. 넥스트유니콘 계약의 성공과 두둑한 성과급이 안겨준 자신감은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그와 그녀 사이에 놓인 거대한 벽의 실체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건 단순히 연봉이나 직급의 차이가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관계를 맺는 방식, 삶의 태도까지 모든 것이 다른, 넘을 수 없는 세계의 벽이었다.


‘인맥 콜렉터’로서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그가 오한나의 세계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만을 증명해주었다. 그의 목표는 이제 단순히 계약을 따내고 승진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그녀 앞에서, 어떤 계산도 없이 당당하게 서기 위해. 그는 이 거대한 벽을 넘어서야만 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