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콜렉터 김대리 10화

돌아올 수 없는 강

by 공감디렉터J

이수진의 연락처를 삭제한 손가락 끝에 남은 씁쓸함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김대리가 보낸 제안서는 거대한 바다에 던져진 유리병 편지처럼 감감무소식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함은 죄책감을 집어삼켰다.

그는 결국, 아픈 추억의 값어치마저 제대로 매기지 못한 실패자가 되는 것인가.


사무실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강대리는 김대리가 ‘선양 프로젝트’를 떠벌리고 다니다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자, 노골적으로 그를 비웃었다.


“그러게 누가 분수도 모르고 대기업에 덤비래? 그러다 우리 회사까지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거 아니야?”


동료들의 시선은 동조와 경멸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물렀다.

김대리는 완벽하게 고립되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던 목요일 오후, 그의 스마트폰이 조용히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스팸이겠거니 하고 무시하려던 순간, 번호 아래 뜬 ‘선양그룹’이라는 글자에 심장이 멎을 뻔했다. 그는 황급히 회의실로 달려가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주)정도기획 김민석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대리님. 선양그룹 구매1팀 최동환 차장입니다.”


심장이 귀에서 울리는 듯했다. 최동환 차장. 이수진이 알려준 바로 그 이름이었다.


“아, 차장님!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보내주신 제안서, 아주 인상 깊게 검토했습니다. 특히 저희 그룹의 ESG 경영 방침과 방향성이 정확히 일치해서, 내부적으로도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김대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전략이, 아니, 이수진이 던져준 열쇠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 주 화요일에 저희 ESG 위원회 임원분들을 모시고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한번 해 주실 수 있을까 합니다.”


ESG 위원회 임원 미팅. 이건 단순히 비품 납품을 위한 실무자 미팅이 아니었다. 그룹의 핵심 경영진 앞에서 회사의 미래 가치를 제안하는, 차원이 다른 무대였다. 김대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거의 소리를 지르듯 답했다.


“네! 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차장님!”


전화를 끊은 그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는 곧장 박팀장에게 달려가, 상기된 얼굴로 이 엄청난 소식을 보고했다.


“팀장님! 선양그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다음 주에 임원 PT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순간, 박팀장의 표정보다 먼저 반응한 것은 강대리였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말도 안 돼! 선양그룹 임원 PT라고? 팀장님, 이건 절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사무실의 모든 소음이 멈췄다. 강대리는 승부수를 던지듯, 김대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이건 명백한 산업 스파이 행위입니다! 우리 회사 내부 정보나 영업 기밀을 선양에 넘기는 조건으로 미팅을 잡은 게 틀림없습니다! 이러다 우리 팀 전체가 법적 문제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당장 징계위원회를 열어 김대리를 조사해야 합니다!”


‘산업 스파이’. ‘징계위원회’.

단어 하나하나가 폭탄처럼 터지며 사무실의 공기를 찢었다. 동료들의 눈빛은 이제 단순한 의심이 아닌, 공포로 변해 있었다. 김대리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회사를 위험에 빠뜨린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박팀장에게 쏠렸다. 그의 결정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입을 굳게 다문 채, 얼어붙은 김대리와 광기에 사로잡힌 강대리를 번갈아 보았다. 마침내,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알겠다.”


그는 먼저 김대리를 향해 말했다. “그 미팅, 나도 들어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성사시켜.” 그리고는 사무실 전체를 향해 선언했다. “그리고 김대리. 미팅이 끝나는 대로, 나하고 면담이다. 네가 어떻게 이 미팅을 잡았는지, 그 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증명해야 할 거야.”


박팀장의 눈이 얼음처럼 차갑게 빛났다.


“만약 증명하지 못하거나, 강대리 말대로 조금이라도 부정한 방법이 있었다고 판단되면, 그땐 내가 직접 자네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다.”


선전포고였다. 그에게 기회를 줌과 동시에,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댄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김대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사무실의 그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는 거대한 섬처럼 홀로 남겨졌다.

선양그룹의 미팅을 따낸 엄청난 성과는, 그를 영웅이 아닌 의혹의 정점으로 밀어 올렸다.

성공하면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고, 실패하면 스파이로 낙인찍힐 터였다.

그의 운명을 가를 프레젠테이션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이틀이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