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콜렉터 김대리 11화

프레젠테이션 승리의 기술

by 공감디렉터J


이틀.

김대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48시간이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선양그룹 ESG 위원회 PT’라는 거대한 산이, 등 뒤에는 ‘산업 스파이 징계위원회’라는 시퍼런 절벽이 버티고 있었다. 잠을 잘 수도, 무언가를 먹을 수도 없었다. 머릿속은 새하얗고, 심장은 불안으로 미친 듯이 날뛰었다. 단순한 프레젠테이션이 아니었다. 그의 사회적 생명과 인격, 모든 것을 내건 재판이었다.


토요일 밤, 그는 홀린 듯 집 앞 ‘만물철물’로 향했다.

조미란 사장은 가게 앞 평상에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그의 퀭한 몰골을 본 그녀가 혀를 찼다.


“이번엔 나라가 아니라 우주를 통째로 팔아먹은 표정이네. 뭐, 사형선고라도 받았어?”


김대리는 말없이 그녀 앞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자신의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물론 회사 이름이나 인물명은 뺐다. 말도 안 되는 기회를 잡았지만, 그 과정이 의심받아 모든 것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이야기를 다 들은 조미란은 라디오를 끄고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총각, 그 높으신 양반들이 듣고 싶은 게 뭔지 알아?”


“...저희 회사의 비전이나... 기술력...?”


“웃기네. 그 양반들은 딱 세 가지만 궁금해. 첫째, ‘내 문제가 뭔지 네가 정확히 아냐?’. 둘째, ‘그래서 네가 뭘 해줄 수 있는데?’. 셋째, ‘너랑 손잡으면 우리한테 뭐가 좋은데?’. 이 세 가지 질문에 3분 안에 답 못하면, 네가 아무리 똑똑한 소리를 한 시간 동안 떠들어봤자 다 소음이야.”


조미란의 투박한 말은 어떤 컨설턴트의 조언보다 날카롭게 김대리의 뇌리에 박혔다.

그렇다. 그는 지금껏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을 준비해야 했다.


그는 집에 돌아와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짜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기술: 타겟을 해부하라.


#인맥활용 #고객분석


그는 먼저 PT에 참석할 선양그룹 임원 3명의 이름을 입수해, 그들의 모든 것을 ‘수집’했다.


한 명은 재무 출신으로 코스트 절감에 대한 인터뷰를 여러 번 한 인물.

다른 한 명은 홍보 전문가로 기업의 사회적 이미지에 관심이 많은 인물.

마지막 한 명은 기술 부사장으로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인 인물.

고객은 하나가 아니었다.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진 세 명의 ‘개인’이었다.

그는 각 임원이 관심을 가질 만한 포인트를 제안서 곳곳에 미끼처럼 심어두었다.


두 번째 기술: 모든 것을 한 장에 담아라.


#기획서 #원페이지보고서


아무리 좋은 제안도 길면 읽지 않는다. 그는 20장이 넘는 제안서의 핵심을 단 한 장의 ‘Executive Summary(임원용 요약 보고서)’로 압축했다.


상단에는 조미란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선양그룹의 현안] :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ESG 경영 지표 강화 및 실질적 비용 절감 방안 부재

[정도기획의 솔루션] : 친환경 오피스 자재 공급 및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통한 ‘Green Office’ 구축

[기대효과] : 연간 12% 운영비용 절감 및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내 평가 등급 상승


누가 봐도 1분 안에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강력한 한 페이지였다.


세 번째 기술: 스토리를 설계하라.


#영업노하우 #설득의심리학


그는 프레젠테이션 전체를 한 편의 영화처럼 구성했다.


기(起): 위기 제시. 선양그룹의 ESG 보고서를 인용하며, 그들의 고민을 정확히 짚어주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승(承): 해결책 등장. 정도기획의 솔루션을 ‘구원투수’처럼 등장시킨다.

전(轉): 구체적 증거. 비용 절감 시뮬레이션 데이터와 친환경 인증 자료 등, 신뢰를 더하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결(結): 공동의 비전. 단순한 납품 계약이 아닌, ‘선양그룹과 정도기획이 함께 만들어갈 지속 가능한 미래’라는 파트너십의 비전을 그리며 마무리한다.


주말 내내 그는 작은 자취방 안에서 수십 번이고 프레젠테이션을 반복했다. 대본의 모든 문장을 외우고, 제스처와 시선 처리까지 계산했다. 더 이상 그는 운에 기대는 인맥 콜렉터가 아니었다. 데이터로 분석하고, 논리로 설계하며, 스토리로 설득하는 프로페셔널 그 자체였다.


화요일 아침.

그는 며칠 새 수척해졌지만, 눈빛만은 칼날처럼 번뜩였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박팀장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턱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가자.”


선양그룹으로 향하는 택시 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창밖을 보던 박팀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김대리.”


“네, 팀장님.”


“이게 마지막 기회다. 증명해봐라.”


박팀장이 고개를 돌려 김대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네가 스파이가 아니라, 진짜 네 실력으로 여기까지 온 거라는 걸.”


택시는 거대한 선양그룹 빌딩 앞에 멈춰 섰다.

김대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재판장으로 들어섰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