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상대, 내편 만드는 설득의 기술
다음 날 아침, 소민규는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출근길이 기대되는 경험을 했다.
어제 엘리베이터에서의 짧은 성공은 밤새 그의 안에서 작은 불씨가 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양복 안주머니에 든 ‘겔로스의 웃음 가면’을 의식적으로 한번 만졌다. 단순한 나무 조각이 아니라, 마치 든든한 지원군과 함께 출정하는 장수와도 같은 기분이었다.
“사무실의 공기는 그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던가. 평소라면 쥐 죽은 듯 조용히 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좋은 아침입니다!”
소대리는 사무실 입구에 서서, 최대한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아침의 정적을 기분 좋게 깨뜨리는 알람 소리 같았다. 몇몇 동료들이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그 시선들 속에, 그는 어제 거울 앞에서 연습했던 바로 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면을 쓰고 있는 나.’
어색함에 얼굴 근육이 경직될 것 같았지만, 가면의 힘을 상상하자 신기하게도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어, 어... 소대리. 좋은 아침.”
“소대리님, 오늘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얼굴이 환하시네.”
평소 눈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던 동료들의 어색하지만 분명한 반응.
늘 보이지 않는 벽처럼 느껴졌던 그들 사이의 거리가 한 뼘은 가까워진 듯했다.
특히, 그의 대각선 자리에 앉은 정대리가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소대리님, 오늘따라 에너지가 넘치시네요. 보기 좋습니다.”
사내 인기남의 따뜻한 칭찬에 소대리는 잠시 심장이 덜컥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미소로 화답했다.
“정대리님 덕분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의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을 때, 소대리는 깨달았다.
세상이 바뀐 것이 아니다. 세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바뀌자, 세상이 그에게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기분 좋은 아침을 만끽하던 중, 김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호출했다.
“소대리, 잠깐 나 좀 보지.”
부장실로 들어서는 소대리의 심장이 다시 쿵, 내려앉았다. 어제의 실패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곧장 허리를 펴고 안주머니의 가면을 느꼈다.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앉아.”
김 부장은 딱딱한 표정으로 서류 하나를 툭 던졌다.
“어제 그 웹드라마 기획안 말이야.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대서양 코스메틱 쪽에 던져봤는데, 의외로 미팅 한 번 하자는 연락이 왔어.”
“네? 정말입니까?”
소대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죽은 줄 알았던 자식이 살아 돌아온 기분이었다.
“근데 기대는 마. 워낙 까다롭기로 소문난 광고주야. 마케팅팀 박 상무라는 여자가 보통이 아니라고. 아마 그냥 아이디어가 신선하니까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거겠지.”
김 부장은 말을 이었다. 그 말은 희망이라기보다는 사형 선고에 가까웠다.
“내일 오후 2시. 내가 다른 미팅이랑 겹쳐서 못 가니까, 자네 혼자 가서 설명 잘 하고 와. 기대는 안 할 테니, 회사 망신이나 시키지 말고.”
혼자 가라고? 그 까다로운 박 상무를?
김 부장은 사실상 이 기획안에 대한 사망 선고를 소대리의 손으로 직접 집행하라는 뜻이었다.
알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대리의 등 뒤로 김 부장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쟤 보내서 될 일인가...”
부장실을 나온 소대리는 그러나,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이 뛰었다. 이것은 위기가 아니었다.
‘웃음 가면’의 힘을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뭐? 너 혼자 대서양 코스메틱 미팅에 들어간다고? 야, 김 부장 완전 너 버리는 카드 쓰는 거네!”
점심시간, 이대리는 제육볶음을 뒤집다 말고 기가 막힌다는 듯 소리쳤다.
“거기 박 상무, 별명이 ‘얼음 마녀’야. 웬만한 베테랑들도 그 여자 앞에만 서면 얼어붙는다는데. 너 괜찮겠냐?” “괜찮아. 나에겐 이게 있잖아.”
소대리는 식판 밑으로 안주머니를 툭툭 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제와는 180도 다른 그의 태도에 이대리는 신기하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이야, 가면이 약효가 좀 받나 본데? 근데 소민규, 명심해. 가면은 네게 ‘기회’를 주는 거지, ‘능력’ 그 자체를 주는 게 아니야. 결국 칼을 휘두르는 건 너 자신이라고. 그리고...”
이대리는 목소리를 낮췄다.
“어떤 힘이든, 세상에 공짜는 없어. 힘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 너무 그 힘에 취하진 마라.”
그의 눈빛은 평소의 장난기 대신 진지함이 서려 있었다. 소대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그 경고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그는 내일의 미팅을 성공시킬 생각에 온통 들떠 있었다.
그날 오후, 소대리는 평생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딱딱한 데이터와 기대효과를 나열하는 대신,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대서양 코스메틱의 주력 상품과 자신의 웹드라마 기획을 연결해, 소비자들이 어떻게 이 이야기에 빠져들고,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팬이 될 것인지를 드라마틱하게 구성했다.
그는 더 이상 주저하는 소대리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가면을 쓴 최고의 스토리텔러였다.
미팅 당일, 대서양 코스메틱의 회의실.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보이는 위압적인 공간이었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얼음 마녀’ 박 상무는 이름 그대로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5분 드리죠. 저희가 왜 소대리님 기획안에 시간을 써야 하는지 설득해보세요.”
순간, 소대리의 심장이 철렁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공포가 안개처럼 피어오르며 목소리를 앗아가려 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안주머니의 가면을 꽉 쥐었다.
‘도와줘, 겔로스!’
눈을 감았다 뜨자, 신기하게도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짜릿한 자신감이 채워졌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가면의 그 미소를.
“5분이라. 좋습니다. 하지만 아마 5분 뒤엔, 상무님께서 제게 50분을 더 달라고 하시게 될 겁니다.”
예상치 못한 도발적인 오프닝에 박 상무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소대리의 프레젠테이션은 한 편의 스탠딩 코미디 같기도, 흡입력 있는 드라마 예고편 같기도 했다.
그는 데이터를 말할 때조차 위트를 섞었고, 기대효과를 설명할 때는 듣는 사람이 미래의 성공을 직접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상무님, 대서양 코스메틱의 신상 립스틱, ‘이터널 선셋’의 타겟 고객은 누구입니까? 바로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이 시대의 모든 ‘공주님’들입니다. 저희 웹드라마의 주인공처럼요. 시청자들은 단순히 드라마를 보는 게 아닙니다.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그녀의 선택을 응원하며 립스틱 색깔을 골라주게 될 겁니다. ‘A 엔딩’을 선택하면 ‘로맨틱 코랄’ 컬러가, ‘B 엔딩’을 선택하면 ‘시크 버건디’ 컬러가 화면을 채우는 거죠. 이건 PPL이 아닙니다. 시청자가 직접 참여하는 ‘플레이어블 광고(Playable AD)’의 시작입니다!”
그가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동안, 회의실 문이 살짝 열렸다 닫혔다. 경쟁사 PT를 마치고 나오던 장대리가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그녀는 충격에 빠진 얼굴로 복도에 서서 유리벽 너머의 소대리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정말 내가 알던 그 소대리라고? 자신감 넘치는 제스처, 막힘없는 언변,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심지어 까다롭기로 소문난 박 상무마저 팔짱을 풀고 그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어 있었다. 장대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소대리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말했다.
“결론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웹드라마 제작이 아닙니다. 대서양 코스메틱과 MZ세대가 함께 써 내려가는 한 편의 ‘연애소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설의 첫 문장을, 상무님께서 열어주시겠습니까?”
정적이 흘렀다. 소대리는 미소를 잃지 않고 박 상무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얼음 같던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재밌네요, 소대리님. 50분, 아니 5시간도 더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요?”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미팅이 끝나자마자 김 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박 상무가 직접 전화를 걸어, 소대리를 극찬하며 당장 계약을 진행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전화기 너머 김 부장의 흥분과 당혹감이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소대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냈다.
그날 저녁, 팀은 예정에 없던 회식을 했다. 주인공은 당연히 소대리였다. 김 부장은 연신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했고, 동료들은 감탄과 놀라움이 뒤섞인 눈으로 그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소대리, 비결이 뭐야? 학원이라도 다녔어?”
“완전 다른 사람이 됐어. 멋있더라!”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그는 가면의 힘을 빌려, 난생처음으로 세상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모든 이가 그에게 축배를 건네는 것은 아니었다.
회식 자리의 가장 구석, 늘 소대리의 성과를 은근히 무시하고 자신의 공으로 돌리려 애쓰던 박 과장이 싸늘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별 볼 일 없는 놈인 줄 알았더니, 어디서 저런 여우짓을 배워왔지?’ 그의 눈에는 시기와 질투라는 이름의 어두운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회식에 합류한 장대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맥주잔을 기울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낮에 보았던 소대리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폭발적인 잠재력, 그 눈부신 자신감.
그것은 단순한 노력으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대리...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지?’
그녀의 눈빛에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강렬한 이끌림과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함께 담겨 있었다.
소대리는 승리의 기쁨에 취해 알지 못했다. 가면이 가져다준 눈부신 빛과 함께, 그의 주변으로 새로운 그림자들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얼음 마녀’ 박 상무의 마음을 녹인 소대리! 당신도 클라이언트 미팅을 앞두고 있나요?
단순한 발표를 넘어 상대를 완벽히 ‘설득’하고 싶다면, 이 3가지 기술을 기억하세요.
1. ‘Yes, But’이 아닌 ‘Yes, And’ 화법
클라이언트가 부정적인 의견이나 우려를 표할 때, “네, 하지만 그건...”이라고 반박하는 것은 최악의 수입니다. 상대는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게 되죠. 대신 “네, 상무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주셨네요. 그리고 저희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대안까지 준비했습니다.”라고 말해보세요.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내 논리를 펼칠 수 있는 최고의 화법입니다.
2. ‘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기
“제 기획안은...” “제가 제안하는 것은...”과 같이 ‘나’를 주어로 삼지 마세요. 대신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상무님과 저희가 함께 만들어갈 미래는...”과 같이 클라이언트를 이야기의 공동 주연으로 끌어들이세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같은 목표를 가진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을 함께 높일 수 있습니다.
3. 데이터에 ‘스토리’라는 옷을 입히는 기술
숫자와 데이터는 논리적이지만 차갑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이야기’입니다. “월평균 이용자 수가 300만 명입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서울 시민 3명 중 1명이 한 달에 한 번은 우리를 만나는 셈입니다. 바로 그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처럼 데이터에 감성적인 의미와 스토리를 부여하세요. 딱딱한 보고가 아닌, 흥미로운 영화 예고편처럼 프레젠테이션을 구성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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