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편 – 용왕의 병상
용궁(龍宮)의 침전에는 심해의 냉기와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산호와 진주로 화려하게 장식된 공간이었지만, 공기는 병세가 짙은 환자의 숨결처럼 축축하고 차가웠다.
용왕은 창백한 얼굴로 옥좌에 비스듬히 기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주치의인 늙은 문어 박사는 형식적인 진맥을 짚으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오늘도 완벽한 연기시군.’
문어 박사의 여덟 개 다리에 달린 촉수들은 누구보다 예민한 의료 센서였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용왕의 맥박은 심해의 해류처럼 힘찼고, 혈색은 최고급 참치를 먹은 날처럼 왕성했다.
그의 ‘병’은 의학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최근 바다 연합 내부에선 신흥 세력인 상어 파벌이 호시탐탐 정권을 노리고 있었다.
용왕은 이 내부의 적들을 견재하는 동시에 대중의 동정을 얻기 위해 ‘병약한 군주’라는 가면을 썼다.
위기감은 가장 강력한 접착제이며, 동정심은 가장 효율적인 무기였다.
“박사... 내 병은 차도가 있는가...”
용왕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물었다. 문어 박사는 약속된 대본을 읊조렸다.
“송구하오나, 폐하. 온갖 약재를 써보았으나 병의 뿌리가 너무 깊습니다. 이제 남은 방법은 단 하나뿐이옵니다.”
그때, 그림자 속에 서 있던 거대한 덩치의 백상아리 장군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의 눈은 마치 사냥감을 포착한 포식자처럼 탐욕스럽게 번뜩이고 있었다.
“육지에 사는 토끼의 ‘간’만이 유일한 약재. 이는 고대 의술서에도 기록된 비방입니다.”
약속된 처방을 읊고 난 문어 박사는 역겨움을 느꼈다.
그 ‘고대 의술서’라는 것은 불과 몇 주 전, 여우가 보낸 기획안을 바탕으로 용궁 서기관들이 급조한 위작(僞作)이었다. 토끼의 간은 약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다 연합의 갈라진 민심을 한데로 모으고, 호시탐탐 권력을 노리는 정적들을 견재할 여론몰이용 스토리의 소재였을 뿐.
‘병든 왕을 위해 적의 심장을 가져와야 한다’는 서사는 백성들을 하나로 묶고, 용왕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할 터였다. 상어 파벌은 왕명을 받들어 위험천만한 육지 침투 작전에 투입될테고, 그 사이 용왕 세력은 흩어진 상어 파벌을 손쉽게 제압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전략. 토끼는 그 틈바구니에서 매우 유용한 희생양이었다.
“육지의 일은... 신중해야 하오.”
용왕은 힘겹게 말했지만, 그의 눈은 승인과 기대로 빛나고 있었다.
결국 문어 박사는 ‘토끼의 간이 유일한 처방’이라는 내용의 공식 진단서를 작성했다. 자신의 먹물을 짜내어 옥새를 찍는 순간, 그는 자신이 의사가 아니라 거대한 사기극의 공모자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약자의 얼굴을 쓴 강자는, 가장 교묘한 지배자다.
편집자의 주: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유독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가상의 적을 설정해 공포를 조장하는 리더가 있다면 일단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정말 나라를 걱정하는 걸까, 아니면 자기 지지율을 걱정하는 걸까. 물론 둘 다일 수도 있다. 정치는 원래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