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에피소드
해가 저물어 덕수궁 돌담길 위로 길고 붉은 그림자가 드리워질 무렵,
낡은 필름 카메라를 목에 건 한 노인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은퇴한 사진작가 윤 노인. 그의 눈은 초점이 없었고, 뷰파인더를 들여다보지 않는데도 허공에서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철컥, 철컥. 텅 빈 소리가 그의 공허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한 달 전, 그의 외동딸은 먼 나라로 떠났다. 결혼 때문이었다.
기쁘게 보내줘야 마땅했지만, 딸이 떠난 집은 소리가 사라졌고, 그의 세상은 색이 바랬다.
그의 앞에 이별택시가 낙엽처럼 사뿐히 멈춰 섰다. 윤 노인은 택시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오래된 약속이라도 한 듯, 그는 익숙하게 일어나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인천공항으로 가주시오.”
김기사는 대답 대신 조용히 차를 출발시켰다.
한참을 침묵하던 윤 노인이 목에 건 카메라를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이 녀석으로 우리 딸 태어날 때부터 다 찍어줬지. 첫 걸음마, 초등학교 입학식, 졸업식... 스무 살 생일까지. 내 앨범엔 그 녀석의 역사가 다 담겨 있어.”
그의 목소리엔 자부심과 쓸쓸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사진작가인 그에게 딸은 최고의 피사체이자 삶의 가장 빛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딸이 떠난 후, 그는 더 이상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프레임에 담고 싶은 유일한 존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영상 통화도 자주 하고, 사진도 보내주는데... 소용없어.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직접 이 카메라에 담아야 내 딸이지. 사진 속의 웃는 얼굴은 그냥 그림이야, 그림.”
그는 딸의 독립과 행복을 이별이라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는 상실감, 더 이상 딸의 역사를 기록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를 짓눌렀다.
‘마지막 가족 사진’은 공항에서 울며 찍은 그날 이후로, 그의 사진첩은 마지막 장에 멈춰 있었다.
어느덧 택시는 불빛이 쏟아지는 인천공항 출국장 앞에 도착했다.
한 달 전, 그가 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바로 그 장소였다.
[ 치유 ] / [ 권고 ]
윤 노인의 거친 손가락이 주저 없이 [치유]를 눌렀다. 그는 조언이 아닌 위로가 절실했다.
김기사는 출국장 전광판을 향해 시선을 둔 채, 거울 속 노인에게 말했다.
“자식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부모라는 사진작가가 담을 수 있는 가장 자랑스러운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 말에 윤 노인은 숨을 멈췄다.
‘마지막 작품’.
그는 딸의 떠남을 실패와 끝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평생을 바쳐 완성한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는 말에, 눈앞이 흐려졌다.
차에서 내린 그는 출국장 유리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 어딘가로 떠나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카메라를 들어 그 풍경을 뷰파인더에 담았다.
철컥. 그의 카메라가 오랜만에 다시 세상을 담기 시작했다.
이별택시는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작품을 남겨둔 채, 공항의 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가족사진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고 슬퍼하지 마라.
진짜 가족은 사진첩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한 장씩 포개는 것이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