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 에피소드
화려한 명품샵과 연예 기획사들이 불야성을 이루는 청담동의 밤거리.
그 한복판에서 검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린 한 여자가 초조하게 서성였다.
20세의 신인 아이돌, 하나. 30분 전, 그녀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숙소에서 도망쳐 나왔다.
손에 쥔 것은 휴대폰 하나와 약간의 현금이 전부였다. 불공정한 계약, 비인간적인 스케줄, 그리고 ‘아리아’라는 예쁜 이름 뒤에 감춰진 진짜 자신을 되찾기 위한 탈출이었다.
그때, 헤드라이트를 끈 이별택시가 그녀 앞에 유령처럼 멈췄다. 혹시 회사에서 보낸 차일까 봐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던 하나는, 자신을 재촉하지도, 아는 척하지도 않는 차의 기묘한 분위기에 이끌려 조수석에 올라탔다.
“어디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주세요.”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택시는 묵묵히 서울의 심장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나는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화려한 간판들을 보며, 지난 3년간의 시간을 반추했다.
무대 위에서 환호받는 아이돌 ‘아리아’는 그녀가 아니었다. 회사가 만들어낸 완벽한 인형일 뿐이었다.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어야 했고, 몸무게 0.1kg에 울고 웃었으며, 가족이 아파도 스케줄을 가야 했다.
“사람들은 제가 반짝이는 삶을 사는 줄 알아요. 하지만 저는... 제 이름도, 제 시간도, 제 감정도 빼앗긴 채 살았어요. ‘아리아’는 진짜 제가 아니에요. 이제 그 인형놀이는 끝내고 싶어요. 그냥... 김하나로 살고 싶어요.”
그녀는 무대 위의 빛나는 별과 작별하고, 땅을 딛고 선 한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막막한 길인지 알면서도, 더 이상 자신을 속이며 살 수는 없었다.
택시는 그녀의 마음을 읽은 듯, 화려한 도심의 불빛이 보이지만 한적하고 고요한 남산 순환도로의 버스 정류장 앞에 멈춰 섰다. 이곳은 정상도, 시작점도 아닌 어중간한 곳이었지만, 새로운 출발을 앞둔 그녀에겐 더없이 완벽한 장소였다.
[ 치유 ] / [ 권고 ]
하나의 망설임 없는 손가락이 [치유]를 눌렀다. 잃어버린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 먼저였다.
김기사는 정면을 응시한 채, 그녀의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관통하는 한마디를 건넸다.
“무대 위의 이름은 관객의 것이지만, 당신의 진짜 이름은 당신의 것입니다. 이제 당신의 것을 되찾을 시간입니다.”
그 순간, 하나의 눈에서 참아왔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것’.
그 당연한 단어가 이토록 가슴을 울린 적은 없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처음으로 얼굴을 가렸던 마스크와 모자를 벗었다. 시원한 밤공기가 맨얼굴에 닿았다.
그녀는 더 이상 숨지 않았다. ‘아리아’가 아닌, ‘김하나’로서 내딛는 첫걸음이었다.
이별택시는 자신의 빛을 되찾기로 결심한 한 사람을 뒤로하고, 다시 길 위로 조용히 합류했다.
가장 빛나는 별이 되기 위해 스스로 빛을 잃어야 했다면,
이제는 그저 당신이라는 이름의 평범한 사람으로 충분하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