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에피소드
밤 10시의 종로.
술기운에 얼굴이 벌게진 40대 남자가 비틀거리며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최 과장.
그의 손에 들린 서류 가방은 출근길의 희망이 아닌, 퇴근길의 굴욕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도 그는 부장의 온갖 인격 모독과 부당한 업무 지시를 묵묵히 견뎌냈다.
‘내일은 반드시 사표를 던지리라’ 수백 번 다짐했지만, 막상 아침이 되면 처자식 생각에 다시 비굴한 자신으로 돌아갔다.
“에이, 더러워서 진짜...!”
그가 허공에 주먹질을 하던 순간, 이별택시가 그의 분노를 삼키려는 듯 조용히 곁에 멈춰 섰다.
최 과장은 대리운전이라도 부른 줄 알고 무심코 뒷좌석에 탔다.
“가봅시다, 어디든.”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그는 처음 보는 택시 기사 앞에서 지난 5년간 묵혀온 울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부장의 만행은 끝이 없었다. 자신의 공을 가로채는 것은 기본, 사람들 앞에서 보고서를 집어 던지며 망신을 주거나, 주말에 개인적인 용무를 시키는 등 그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여겼다.
“내가 그 인간 때문에 공황장애까지 왔습니다. 그런데도 그만두질 못해요. 당장 그만두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결국 도망치는 패배자 같아서... 어떻게든 이기고 그만두고 싶습니다. 멋지게 한 방 먹이고 싶다고요!”
그는 통쾌한 복수극을 꿈꿨다.
부장의 비리를 폭로하거나, 모두 앞에서 그의 만행을 외치는 상상을 수십 번도 더 했다.
하지만 현실의 그는 내일 아침 제출할 사직서 문구 하나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이별’은 단순히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짓밟은 상사와의 관계를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택시는 그의 아파트 단지가 보이는 한적한 공원 벤치 앞에 멈췄다.
집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결심을 할 수 있는 장소였다.
[ 치유 ] / [ 권고 ]
최 과장은 더 이상 위로가 필요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이 지긋지긋한 관계를 끝낼 ‘방법’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권고] 버튼을 눌렀다.
김기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권고는 감상적인 위로가 아닌,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었다.
“사직서에 그 상사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쓰지 마십시오. 퇴사 사유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난다’고 간결하게 적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내일, 그 사직서를 부장 책상이 아닌 인사팀에 직접 제출하십시오.”
김기사는 잠시 말을 멈춘 뒤, 결정적인 한마디를 덧붙였다.
“최고의 복수는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당신의 인생에서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의 퇴사가 그에게는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 그저 ‘더 좋은 곳으로 가는 이직’으로만 보이게 하십시오. 당신의 무관심이 그에게는 가장 큰 패배감을 안겨줄 겁니다.”
최 과장의 머릿속이 번쩍 뜨이는 듯했다. 분노와 폭로로 가득 찬 복수극이 아니었다.
상대를 자신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품위 있고 완벽한 승리였다. 그는 차에서 내려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미래만을 담은 간결하고 희망찬 사직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별택시는 가장 현명한 복수를 계획하는 한 남자를 뒤로하고 밤의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
가장 통쾌한 이별은 소리 지르며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미소와 함께 상대를 나의 세계 밖으로 조용히 밀어내는 것이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