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두가 인싸가 될 필요는 없다

by 공감디렉터J


회사의 소문난 마당발

우리 회사에는 '인맥 부자'가 있다.

사내는 물론 관계사까지, 그의 전화번호부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다.

팀장들과 편하게 커피를 마시고, 임원들과 격의 없이 술잔을 기울인다.

다음 달 인사이동 소식부터 신규 프로젝트 정보까지, 그는 회사의 '위키리크스'다.


놀라운 건 그가 그렇게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만 어울리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현직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퇴사했거나 이직한 사람들까지, 누구와도 친분을 유지하며 지낸다. 심지어 나 같은 평범한 동료와도 진심으로 즐겁게 지낸다.


부러웠다. 그의 사교성과 정보력이 탐났다. 그래서 따라나섰다.

낯선 이들과의 술자리, 처음 가보는 네트워킹 회동. 신선했고, 때론 즐거웠다.


'나도 이렇게 하다 보면 인싸가 되겠지?'


가랑이가 찢어지는 순간

착각이었다.

체력 고갈은 기본이었다. 진짜 문제는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에너지를 빨아먹는다는 것이었다.

명함을 주고받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스몰토크를 이어가는 시간. 외향적인 이들에게는 충전의 시간이겠지만, 내게는 방전의 연속이었다.


'이게 내 업무랑 무슨 상관이지?'

'저 사람이랑 또 만날 일이 있을까?'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는 내게 '그냥 만남'은 고문이었다.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이 정의한 내향성과 외향성의 차이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사교 활동에서 에너지를 얻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 충전된다.


타고난 네트워커의 정체

그제야 동료가 다시 보였다. 그는 단순히 '발이 넓은' 사람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고, 어떤 이야기든 흥미롭게 들을 줄 알았다.

서두르지 않았고, 목적 없이도 대화를 즐겼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보가 흘러나왔고, 신뢰가 쌓였다.


수전 케인(Susan Cain)은 『콰이어트(Quiet)』에서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척하는 것은 자신의 본질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나는 그의 스타일을 흉내 내려다 나만의 강점을 잃어버릴 뻔했다.


MBTI 시대의 자기 이해

이제는 지나가버린 유행이긴 하지만 MBTI가 주목받았던 이유가 여기 있다.

자신의 성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한다는 의미다.

갤럽의 강점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6배 더 높은 업무 몰입도를 보인다고 한다. 남의 강점을 부러워하며 따라 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강점을 찾아 개발하는 것이 현명하다.


결국 나는 100명과 얕게 아는 것보다 10명과 깊게 아는 것이 더 행복한 사람이었나 보다. 대규모 네트워킹 파티보다는 소규모 독서 모임이 편하고, 명함을 뿌리는 것보다 한 사람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

이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네트워킹이다.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의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 이론도 있지만,

동시에 깊은 신뢰 관계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다.


부러우면 박수치고, 나는 내 길을

『Good to Great』의 저자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위대한 기업들은 자신들이 최고가 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한다"고 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동료의 네트워킹 능력은 여전히 부럽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따라 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깊이 있는 리서치, 꼼꼼한 분석, 신중한 의사결정. 이것이 나의 강점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역할이 필요하다. 모두가 마당발이 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빛나는 것이다.


가랑이 찢어질 걱정 말고, 내 보폭대로 걸어가자.

그것이 가장 지속 가능하고, 진정성 있는 성장의 길일 테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