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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앉아 있네!"

by 공감디렉터J
어둠을 피해 쓰는 소설


맞다. 나는 소설을 쓴다.

직장에서 마주치는 에피소드들, 발견하는 소소한 노하우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모든 것이 내 소설의 재료가 된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도, 갑작스러운 재난에 대한 불안도 모두 이야기가 된다.

소설은 현실에 뿌리를 두면서도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내 맘대로 갈등을 만들고, 원하는 결말을 그려낼 수 있는 무한한 캔버스. 은하철도 999처럼 현실의 무게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유쾌한 탈출구다.


어린 시절, 해가 지는 게 두려웠다.

학교가 집보다 좋았고, 하교 시간이 다가오면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어둠이 찾아오면 관에서 깨어난 드라큘라라도 나타날 것처럼, 그렇게 밤이 무서웠다.

아버지가 귀가하시면 폭풍이 시작됐다. 하루의 상처와 스트레스가 거칠게 쏟아졌고, 가족들은 그것을 무기력하게 받아내야 했다.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만화책과 소설책 속으로 도망쳤다.


정신의학자 베셀 반 데어 콜크(Bessel van der Kolk)는 저서 『몸은 기억한다(The Body Keeps the Score)』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들은 상상력을 통해 안전한 공간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어린 나에게 책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다.


빛을 좇는 삶

지금도 나는 SF 소설과 B급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결핍되었던 것을 성인이 되어 채우려는 무의식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무거웠던 과거에 대한 반작용으로, 가벼움과 유쾌함을 추구하게 된 듯하다.

이제는 해가 져도 두렵지 않다.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집안의 불은 환하게 켜둔다. 트라우마는 그렇게 흔적을 남긴다.


상처가 만든 우주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우리는 모두 부서진 곳에서 더 강해진다"고 했다. 일본의 '긴츠기(金継ぎ)' 예술처럼, 깨진 부분을 금으로 메워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그닥 유쾌하지 못했던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이 놀이동산과 생일선물, 가족여행과 자상한 손길들로 채워지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지금도 뛰어놀 수 있는 광활한 상상의 세계를 소유하게 해 주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은 '전이 공간(Transitional Space)' 개념을 통해 상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실과 환상 사이의 이 공간에서 우리는 창조적이 되고, 치유받는다.


오늘도 소설을 쓴다

무거운 분위기보다 유쾌한 농담을 선호하고, 딱딱한 정장보다 편안한 캐주얼을 좋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어둠을 피해 빛을 찾아온 여정의 흔적들이다.

칼 융(Carl Jung)은 "창조적 활동은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소설을 쓰는 것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나를 지켜온 생존 방식이자 치유의 과정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소설을 쓴다.

현실의 무게가 버거울 때, 일상이 답답할 때, 그리고 어린 시절의 그림자가 슬며시 기어 나올 때. 키보드를 두드리며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그곳에는 언제나 빛이 있고, 웃음이 있고, 해피엔딩이 기다린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


그래, 맞다. 나는 소설을 쓴다. 그리고 계속 쓸 것이다.

이것이 어둠을 이겨낸 나만의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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