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번째 에피소드
마지막 기차가 떠나고 적막이 내려앉은 서울역 광장.
스스로를 ‘선장’이라 부르는 한 노숙자가 자신의 전 재산이 든 낡은 배낭을 곁에 둔 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 도시의 밤과 10년 만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초라한 행색과 달리, 그의 눈빛은 형형했고, 허름한 옷차림 속에서도 기이한 위엄이 느껴졌다.
그는 도시에 묶인 노예가 아니었다. 오히려 도시를 관찰하고 유영하는 자유로운 영혼에 가까웠다.
그가 마지막으로 도시의 공기를 들이마시던 그때, 이별택시가 그의 마지막 항해를 위한 배처럼 곁에 멈춰 섰다. 선장은 놀라지 않았다. 마치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는 듯, 배낭을 둘러메고 익숙하게 차에 올랐다.
“이 도시의 동쪽 끝으로 갑시다. 오늘 밤 출항이오.”
그의 목소리는 유쾌하고 힘이 넘쳤다. 그는 자신의 지난 10년을 실패담이 아닌, 흥미진진한 모험담처럼 이야기했다. 사업 실패로 모든 것을 잃고 길바닥에 나앉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역설적인 자유를 발견했다.
“저기 저 빌딩 불빛 보시오. 저 안에 갇힌 사람들은 내일 갚을 대출금, 상사의 잔소리, 끝없는 경쟁에 시달리지.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되었소. 잃을 게 없는 자의 자유, 그건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요.”
그는 도시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길 위의 철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이 자유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낭만만으로 겨울의 추위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작은 어촌 마을로 떠나, 뱃일을 도우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이별’은 자신을 품어주었던 도시의 밤, 그리고 바닥에서 발견한 기묘한 자유와의 작별이었다.
택시는 동서울 종합터미널, 수많은 지방행 버스가 출발하는 곳에 멈췄다. 그의 새로운 항해가 시작될 항구였다.
[ 치유 ] / [ 권고 ]
지난 상처는 이미 길 위에서 모두 치유되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항해를 위한 마지막 ‘조언’이었다. 그는 선장의 품격으로 [권고] 버튼을 눌렀다. 김기사는 그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존중하며, 구체적인 행동 원칙을 제시했다.
“새로운 항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선장’이라는 이름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지난 이야기를 훈장처럼 자랑하지도, 흉터처럼 숨기지도 마십시오. 그저 바다에서 건져 올린 낡은 동전처럼, 정말 필요할 때 당신의 진심을 증명하는 데 단 한 번만 사용하십시오. 새로운 삶은 새로운 이름과 빈손에서 시작하는 법입니다.”
그 권고에 선장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선장’이라는 이름이 지난 10년을 버티게 해준 갑옷이었지만, 새로운 삶에는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는 과거일 뿐, 발목을 잡는 족쇄도, 내세울 훈장도 아니었다.
차에서 내린 그는 터미널 대합실로 향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이름을 나지막이 되뇌었다.
이별택시는 낡은 이름을 버리고 새 출발을 향해 떠나는 한 자유로운 영혼의 뒷모습을 비추며, 다시 도시의 밤 속으로 닻을 올렸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스스로를 가두지만,
모든 것을 잃은 자는 비로소 세상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