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택시: 억울했던 지난날들

열일곱번째 에피소드

by 공감디렉터J


밤늦은 서초동 법원 앞.

수십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낡은 서류 가방을 든 한 남자가, 불 꺼진 대법원 건물을 노려보고 있었다.

안 선생. 20년 전, 그는 동업자의 배신과 법의 허점 때문에 평생을 일군 공장을 하루아침에 빼앗겼다.

그 후 그의 인생은 ‘억울함’을 증명하기 위한 투쟁, 그 자체가 되었다.

그의 분노는 특정 개인이 아닌, 자신을 외면한 세상 전체를 향해 있었다.

그의 시간은 억울한 그날에 멈춰버렸고, 그의 마음은 차가운 증오로 얼어붙었다.

그가 1인 시위를 하던 팻말을 내려놓고 지친 몸을 벤치에 기댔을 때, 이별택시가 그의 기나긴 싸움을 위로하듯 곁에 멈췄다. 그는 세상을 믿지 않았지만, 이 이상한 택시에는 저항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 순순히 올라탔다.


택시 안에서 그는 변호사 앞에서 사건을 브리핑하듯, 막힘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위조된 서류, 거짓 증언, 편파적인 판결. 그의 기억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날카로웠고, 목소리에는 20년 묵은 원한이 서려 있었다.


“내 청춘, 내 가족, 내 인생 전부를 잃었소. 그런데 저들은 지금도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겠지. 이 억울함이 풀리기 전에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어. 이 증오를 놓아버리는 건... 그들에게 항복하는 거나 마찬가지요.”


그의 이별은 과거의 사건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정리는 곧 패배를 의미했다.

증오는 그의 삶을 갉아먹는 독이었지만, 동시에 그를 지금까지 버티게 해준 유일한 버팀목이기도 했다.

이 딜레마 속에서 그는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택시는 그의 이야기와 함께 한강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쉴 새 없이 기차가 오가는 한강철교 아래에 멈춰 섰다. 그의 멈춰버린 시간과는 대조적으로, 세상의 시간은 저렇게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 치유 ] / [ 권고 ]


수십 년간 법적, 논리적 싸움을 해온 그에게 어설픈 권고는 통하지 않았다.

그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단 한 번의 깊은 울림, 즉 [치유]가 필요했다.

김기사는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그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을 향한 미움은,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고 상대에게 던지려는 것과 같습니다. 정작 불타는 것은 당신의 손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그들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손에 쥔 그 뜨거운 미움을 강물에 던져버리고, 당신의 삶을 되찾는 것입니다.”


‘불타는 것은 당신의 손.’ 그 비유가 안 선생의 가슴을 찔렀다.

그는 복수를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불태우고 있었다.

정작 고통받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증오에 중독된 자기 자신이었다.

차에서 내린 그는 강물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마치 무언가를 던지는 시늉처럼,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수십 년간 자신을 짓눌러온 뜨거운 석탄을, 그는 비로소 강물에 던져버렸다.


이별택시는 가장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찾기로 결심한 한 남자를 뒤로하고, 다시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과거의 불행에 복수하겠다며 현재의 당신마저 불행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당신을 망가뜨린 세상이 진정으로 바라는 복수의 모습이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