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택시: 인생의 허무와 마주하기

열다섯번째 에피소드

by 공감디렉터J


가을밤의 스산한 공기가 내려앉은 대학교 캠퍼스.

평생을 ‘의미’와 ‘존재’에 대해 가르쳤던 노년의 철학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이 있던 낡은 인문관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정년 퇴임 후 3년, 그는 명예교수라는 직함만 남은 채 세상과 유리된 섬이 되었다.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수많은 이론들은, 밀려오는 허무함 앞에서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젊은 학생들이 웃고 떠들며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그들에게 투명인간이었다.

자신의 지혜가 더 이상 쓸모없어진 폐허 속에서, 그는 조용히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때, 이별택시가 낡은 가로등 불빛을 등지고 그의 앞에 멈췄다. 그는 이 기이한 현상조차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여기며, 탐구하듯 차에 올랐다.


차 안에서 그는 기사를 학생 삼아 마지막 강의를 하듯, 자신의 삶을 반추했다.


“평생을 허무주의와 싸우는 법을 가르쳤지.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인간 스스로가 삶의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고 역설했소. 그런데 정작 내 삶을 돌아보니... 남는 게 아무것도 없어. 책 몇 권, 잊혀진 논문 몇 편. 이게 내가 창조한 의미의 전부인가. 지식의 탑을 높이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꼭대기에서 마주한 건 텅 빈 하늘뿐이야.”


그의 이별은 특정 대상과의 이별이 아니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지식’과 ‘의미’라는 개념 그 자체와의 결별이었다. 그는 삶이라는 거대한 질문에 단 하나의 답도 찾지 못한 채, 종착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택시는 그의 지적인 세계와는 가장 거리가 먼, 날것의 삶이 아우성치는 광장시장 한복판에 멈췄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포장마차의 불빛과 사람들의 활기, 고소한 음식 냄새가 뒤섞여 혼란스러울 정도의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 치유 ] / [ 권고 ]


이론으로 무장한 그에게 어설픈 조언은 무의미했다. 그의 메마른 마음에 필요한 것은, 삶의 온기를 되찾게 해줄 한 방울의 위로였다. 그는 지적인 패배를 인정하듯, [치유] 버튼을 눌렀다.

김기사는 시장의 소음을 배경으로, 노교수의 평생의 화두에 답을 건넸다.


“교수님께서 평생 찾아 헤매신 ‘의미’는, 거창한 이론 속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기 저 상인이 파는 따뜻한 붕어빵 하나에,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어 먹는 순간에 있을지도요. 허무함은 세상을 머리로만 이해하려 할 때 찾아오는 법입니다.”


‘머리로만 이해하려 할 때.’ 노교수는 그 말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그는 삶을 맛보고 느끼는 대신, 평생을 분석하고 정의하려 애썼다.

차에서 내린 그는 홀린 듯 포장마차로 다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붕어빵을 사서 한 입 베어 물었다.

팥의 달콤함과 반죽의 온기가 입안에 퍼졌다. 그것은 그 어떤 철학서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명백하고 단순한 ‘삶의 감각’이었다.


이별택시는 가장 복잡한 지식의 길 끝에서 가장 단순한 진리를 만난 한 노인을 뒤로하고, 다시 길 위로 나섰다.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진짜 허무한 것은 삶에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정답 없는 삶 그 자체를 뜨겁게 살아보지 못했다는 깨달음이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