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심연의 눈
2027년 3월 22일, 오전 2시.
이지수의 한마디는 흩어진 팀의 심장을 다시 하나로 묶는 강력한 접착제였다.
"권도윤... 그는 스스로를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민재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고 믿죠. 22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어요. 아니,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는 화이트보드에 '완벽한 통제에 대한 집착'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신은 실수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가장 두려워하죠."
오민재는 팀원들을 바라봤다.
"우리가 그의 악보대로 춤추기를 멈추고, 우리만의 변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하면, 그는 반드시 균열을 보일 겁니다."
강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리가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되는 거예요. 그의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거죠."
오민재의 분석은 반격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제 수사대는 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인형이 아니었다. 그의 심연을 역으로 들여다보는 사냥꾼이 되었다.
작전은 즉시 시작되었다.
이지수는 권도윤이 만들어 놓은 '살아있는 미로'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길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녀는 권도윤의 시스템 깊숙한 곳에, 그가 전혀 예측하지 못할 거짓 정보를 심기 시작했다.
"강태우 팀장이 수사를 포기하고 잠적했다는 가짜 뉴스를 흘릴게요."
"한서진 교수가 사적 복수를 위해 홀로 움직인다는 허위 동선도 만들어요."
"그리고 박유진 씨가 권도윤의 거처를 찾았다는 거짓 정보도."
이지수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권도윤의 통제 시스템에 미세한 노이즈를 일으킬 거예요. 그가 우리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거죠."
한편, 박유진은 권도윤의 과거 행적을 쫓는 데 집중했다.
그녀는 '소나타 옵스큐라'의 폐쇄된 서버에 남겨진 수많은 '과제' 기록들을 샅샅이 훑었다.
수백 명의 회원, 수천 개의 과제. 그러다 그녀의 눈이 한 줄의 기록에서 멈췄다.
[단원명: 이카루스]
[과제: 3단계 진행 중]
[상태: 과제 거부]
[처리: 완료]
'처리 완료'라는 섬뜩한 단어.
대부분의 '단원'들이 권도윤의 통제 아래 움직였지만, 유일하게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려 했던 존재.
박유진은 직감했다. '이카루스'가 권도윤의 완벽한 연주에 유일한 흠집을 낼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을.
"이카루스... 누구지?"
그녀는 17년간 다져온 현장 추적 능력을 총동원했다.
잊혀진 소문과 사람들의 기억 속을 파고들어, '이카루스'의 진짜 정체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그리고 사흘 후, 도시의 가장 후미진 요양병원에서 그를 찾아냈다.
"이진우 씨 병실이 어디죠?"
"305호예요. 하지만... 그분은 면회를 거의 안 받으세요."
간호사의 말에도 박유진은 멈추지 않았다.
305호. 문을 열자, 창가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 한 남자가 보였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공허한 눈으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진우 씨?"
박유진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은 초점이 없었다.
"...누구세요?"
"저는 미스터리 수사대의 박유진이라고 합니다. 권도윤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서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이진우의 몸이 움찔했다. 그의 눈에 잠깐 공포가 스쳤다.
"...그 이름은... 하지 마세요."
"당신이... 권도윤의 연주를 망친 유일한 사람이군요."
박유진의 말에, 이진우는 공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저는... 아무것도 망치지 못했어요. 그는... 완벽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그의 '과제'를 거부했어요. '소나타 옵스큐라'의 기록에 남아 있어요."
이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창문을 가리켰다.
"그래서 이렇게 됐어요. 제 가족도, 제 직업도, 제 인생도... 모두 잃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진우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2010년... 저는 '소나타 옵스큐라'의 회원이었어요.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거든요. 처음에는 좋은 사람들이 모인 곳 같았어요. '마에스트로'라는 관리자도 친절했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했다.
"하지만 점점 이상해졌어요. '마에스트로'가 제게 '과제'를 주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간단한 거였어요. 음악 감상평 쓰기, 사진 찍어 올리기... 하지만 점점 이상한 걸 요구했어요."
"어떤 거요?"
"제 가족의 정보를 알려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제 직장 상사를 미행하라고 했어요. 거부하면... 제가 올렸던 모든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했어요."
이진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저는... 거부했어요. 더 이상 못 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리고?"
"제 인생이 무너졌어요. 제가 올렸던 사진들이 조작되어 인터넷에 퍼졌어요. 저를 범죄자로 만드는 거짓 정보들이 쏟아졌어요. 직장에서 해고됐고, 아내는 저를 떠났고, 친구들은 저를 외면했어요."
그는 떨리는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이 요양병원에 오게 됐죠. 보시는 것처럼 모든 게 망가진 채로 말이죠."
박유진은 그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의 떨리는 손끝에서, 박유진은 거대한 악마에게 대항했던 작은 용기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진우 씨. 당신은 용감했어요. 권도윤에게 저항한 유일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저는 졌어요."
"아니요. 당신은 이겼어요. 당신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증거예요. 권도윤의 완벽한 통제가 실패했다는 증거."
박유진은 이진우를 똑바로 바라봤다.
"우리를 도와주세요. 권도윤을 끝낼 수 있게."
권도윤의 완벽한 세계에, 예측 불가능한 두 개의 변수가 생겨났다.
하나는 그의 시스템을 교란하는 디지털 유령, 이지수.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의 실패를 증언하는 과거의 망령, 이진우.
심연을 들여다보던 악마는, 이제 심연 속의 또 다른 눈들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음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악에게 지지 말고 도리어 선으로 악을 이기라.
(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 로마서 12:21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