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수사대-시즌 4: 악마의 연대기

EP.9 최후의 연주

by 공감디렉터J


2027년 3월 28일, 오후 11시.

권도윤이 보낸 좌표는 서울 외곽의 폐쇄된 오페라 하우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1980년대에 지어졌다가 2000년대 초반 폐관한 이 건물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희미한 '치익'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환풍구를 통해 정체불명의 가스가 빠르게 유입되고 있었다.

"가스다! 모두 입과 코를 막아!"

강태우가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달콤하면서도 역한 냄새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건... 환각제..."

오민재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팀원들의 시야도 흐려지며 현실의 감각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들은 각자의 가장 끔찍한 과거 속에 고립되어 있었다.


강태우는 11년 전 취조실에 있었다. 윤재혁이 그의 앞에 앉아 있었다.

"저는 범인이 아닙니다. 제발... 제발 믿어주세요."

윤재혁이 울고 있었다. 하지만 강태우는 믿지 않았다.

"당신은 거짓말하고 있습니다."

환각 속 강태우가 말했다.


한서진은 16년 전, 언니의 아파트에 있었다.

바닥에는 언니의 싸늘한 시신이 누워 있었다. 그리고 벽에는 붉은 나비가 그려져 있었다.

"서진아... 왜 날 구해주지 못했어?"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유진은 21년 전, 비 오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동생 유미가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으며 멀어지고 있었다.

"언니, 나 갔다 올게!"

유미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비 속으로 사라졌다.

"유미야! 돌아와!"

박유진이 소리쳤지만, 동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민재는 7년 전, 동생의 방에 있었다.

동생 민서의 컴퓨터 화면에는 악플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넌 쓰레기야", "죽어버려",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


"오빠... 나 너무 힘들어..." 민서가 울고 있었다.

하지만 환각 속 오민재는 의도와 상관없이 냉담하게 대답했다.

"인터넷일 뿐인데 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


그때, 무대 중앙에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권도윤이 방독면을 쓰고 서 있었다. 그는 팀원들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황홀경에 빠져 지휘봉을 휘둘렀다.

"아름다워! 이 얼마나 완벽한 고통의 하모니인가!"

그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22년간 만들어온 최고의 작품이다! 너희들의 고통이 만들어내는 교향곡!"


하지만 그의 예측과 달리, 한 사람만이 환각 속에서 몸부림치지 않았다. 강태우였다.

그는 윤재혁의 환영 앞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권도윤이 보낸 편지의 구절이 맴돌았다.

'당신 안의 괴물'.

그는 더 이상 과거를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맞아. 나는 오만했어. 내 능력을 과신했고, 그 결과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렸지.'

그는 자신의 과오를 정면으로 인정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죄책감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는 대신 차가운 분노와 냉철한 이성으로 변모했다. 실수를 인정하자 비로소 길이 보였다.

그는 눈을 번쩍 떴다. 환각은 여전했지만, 그의 의식은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 있었다.

"오 교수님!"

강태우가 외쳤다.

"이건 환각입니다! 우리 뇌의 트라우마를 증폭시키는 신경 가스일 뿐이에요! 과거는 현실이 아닙니다!"

강태우의 외침은 환각 속을 헤매던 팀원들의 의식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특히 오민재는 '트라우마 증폭'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심리학자로서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건 환각이야. 내 기억을 왜곡한 거야.'

그는 심호흡하며 동생의 환영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민서야... 오빠가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넌 이제 여기 없어. 이건 내 기억일 뿐이야. 내가... 내가 너를 놓아줄게."

그가 현실을 직시하자, 환각의 힘은 급격히 약해졌다.

곧이어 다른 팀원들도 강태우와 오민재의 도움으로 하나둘씩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

한서진은 언니의 환영에게 말했다.

"언니... 미안해. 내가 늦었어. 하지만 이제... 이제 범인을 잡을 거야. 언니를 위해서."

박유진은 동생의 환영에게 말했다.

"유미야... 언니가 반드시 진실을 밝혀낼게. 약속해."


자신의 연주가 통하지 않자 당황한 권도윤이 손뼉을 쳤다.

그러자 객석의 그림자 속에서 여러 명의 인영들이 나타나 팀원들을 포위했다.

그들은 바로 '조각가', 한서진 언니의 살인범, 박유진의 동생을 납치했던 유인책 등, 권도윤에게 조종당했던 꼭두각시들이었다.

"피날레를 장식할 시간이다!"

권도윤이 지휘봉을 휘둘렀다.

"너희들의 손으로 서로를 파멸시켜라!"

권도윤의 명령에 꼭두각시들이 달려들려는 순간, 오민재와 이지수가 앞으로 나섰다.

"멈춰요!"

오민재가 그들을 향해 외쳤다.

"당신들도 피해자입니다! 권도윤은 당신들의 약점과 상처를 이용해 당신들을 조종했을 뿐이에요! 언제까지 그의 노예로 살 겁니까?"

이지수 역시 그들을 향해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화면에는 그들이 권도윤에게 심리적으로 조종당했던 기록들, '소나타 옵스큐라'의 비밀 게시판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걸 보세요! 당신들이 저지른 짓이 아니라, 그가 시킨 짓이라는 증거입니다! 당신들은 살인자가 아니라, 그저 아팠던 사람들이에요. 그가 당신들의 고통을 이용한 겁니다!"

사이버 불링의 피해자였던 이지수의 절실한 외침과, 타인의 상처를 깊이 이해하는 오민재의 진심 어린 설득.

그것은 권도윤의 강압적인 명령과는 차원이 다른,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꼭두각시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휘두르던 흉기를 내려다보며 괴로워했다.

마침내, '조각가'라 불렸던 남자가 칼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무릎을 꿇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의 행동을 시작으로, 다른 꼭두각시들도 하나둘씩 무기를 버리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권도윤의 오케스트라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자신의 꼭두각시들에게마저 버림받은 그는 경악과 분노에 찬 눈으로 수사대를 노려보았다.

"안 돼... 이건... 이건 내 연주야..."

그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무대 뒤편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 했다.

"도망칠 생각 마세요."

강태우가 그를 막아섰다.

"22년간의 연주는 이제 끝입니다."

권도윤은 비웃었다.

"끝? 아니, 이제 시작이야. 너희가 나를 잡는다 해도, 나는 이미 승리했어. 너희들의 인생을 파괴했으니까."

"아니요."

한서진이 앞으로 나섰다.

"당신은 우리의 인생을 파괴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었죠."

박유진도 앞으로 나섰다.

"당신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 고통을 이겨냈어요. 그리고 서로를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권도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 돼... 너희는... 부서져야 해..."


그 순간,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이지수가 미리 신고해둔 경찰이 도착한 것이었다.

권도윤은 도망치려 했지만, 강태우가 그를 붙잡았다. 두 사람은 바닥에 넘어지며 몸싸움을 벌였다.

"놔! 놓으라고!"

권도윤이 발버둥 쳤다.

"당신의 연주는 끝났습니다."

강태우가 그의 팔을 꺾었다. 권도윤이 비명을 질렀다.

경찰들이 달려와 권도윤을 체포했다. 수갑이 채워지는 순간, 권도윤은 마지막으로 수사대를 바라보며 비웃었다.

"너희는... 평생 나를 잊지 못할 거야. 너희의 악몽 속에서... 나는 영원히 살 거야..."

하지만 강태우는 차갑게 대답했다.

"아니요. 우리는 당신을 잊을 겁니다. 당신은 그저... 우리가 지나온 어둠일 뿐이니까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은 결국 온 세상을 눈멀게 만들 뿐이다.
(An eye for an eye only ends up making the whole world blind)
- 마하트마 간디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