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1 : 편집된 낙원
성민은 차가운 스테인리스 조리대 앞에 섰다.
그의 앞에는 '마더(Mother)-K’라는 이름이 붙은, 은색의 매끈한 로봇 팔 두 개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성민은 떨리는 손으로 오래된 USB 드라이브를 로봇의 제어 패널에 꽂았다.
파일 이름: [mom_kimchi_stew_ver_final.dat]
3년 전,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 요리 레시피를 구술하는 대신, 미각 데이터 추출 헬멧을 썼다.
“내 손맛... 잊어버리면 안 되잖아. 우리 아들 김치찌개 없으면 밥도 못 먹는데.”
어머니는 웃으며 자신의 뇌파와 근육의 미세한 떨림, 간을 볼 때의 혀의 감각 데이터를 모두 디지털화해서 남겼다. 그것이 그녀가 성민에게 남긴 유일한 유산이었다.
“레시피 로딩 완료. 조리를 시작합니다.”
건조한 기계음과 함께 로봇 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탁, 탁, 탁, 탁.
칼질 소리가 주방을 울렸다. 성민은 숨을 죽였다.
그 리듬. 도마에 칼이 닿는 간격, 파를 썰 때의 미묘한 각도, 심지어 김치를 볶을 때 냄비 가장자리를 툭툭 치는 습관까지. 어머니의 것이었다. 로봇 팔의 관절이 꺾이는 각도가 생전 어머니의 굽은 등을 연상케 해 성민은 울컥 목이 메었다.
치이익-
돼지고기가 냄비 바닥에서 익어가는 소리, 묵은지의 시큼하고 쿰쿰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3년 만에 맡는 냄새였다. 그리움이 폭발하듯 밀려왔다.
“간을 봅니다.”
로봇 팔 끝에 달린 센서가 국물을 한 방울 찍어 분석했다.
“염도 1.2%, 당도 0.8%, 산도 3.4%. 마더 데이터셋 일치율 99.98%.”
30분 뒤, 식탁 위에는 김치찌개 한 그릇이 놓였다.
성민은 숟가락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
눈물이 핑 돌았다.
맛있었다. 아니, 그냥 맛있는 게 아니었다.
매운맛 끝에 감도는 특유의 달큰함, 푹 익은 김치의 식감, 입천장이 까질 듯한 뜨거운 온도까지.
어머니가 해주던 그 맛 그대로였다. 마치 주방에서 어머니가 “아들, 밥 먹어!” 하고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성민은 허겁지겁 밥을 말았다. 뜨거운 국물과 함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엄마... 엄마...”
그는 빈 그릇을 싹싹 긁어먹었다. 배가 부른데도 계속 먹었다. 이 맛이 사라지는 게 두려웠다.
그날 이후, 성민은 매일 저녁 '마더-K’를 가동했다.
된장찌개, 제육볶음, 계란말이. 어머니의 레시피는 무궁무진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풍기는 밥 냄새. 로봇이 만들어내는 달그락거리는 소음. 성민은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소파에 누워 잠들곤 했다. 로봇 팔은 어머니의 유령이자, 그녀의 대리인이었다.
하지만 일주일쯤 지났을까.
성민은 묘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날의 메뉴는 콩나물국이었다.
성민은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완벽했다. 시원하고 칼칼한 맛.
그런데... 너무 완벽했다.
어머니의 요리에는 항상 '변수’가 있었다.
어떤 날은 조금 짰고, 어떤 날은 콩나물이 너무 삶아져서 흐물거렸고, 가끔은 국에서 머리카락이 나오기도 했다. 기분 좋은 날엔 깨소금을 왕창 뿌렸고, 부부 싸움을 한 날엔 청양고추를 썰어 넣어 혀가 아릴 정도로 매웠다.
하지만 '마더-K’의 요리에는 기복이 없었다.
매일매일 소금 0.1g의 오차도 없는, 실험실에서 정제된 듯한 완벽한 맛.
그것은 '엄마의 맛’이었지만, 동시에 '엄마의 맛’이 아니었다.
그 맛에는 어머니의 피로, 그날의 기분, 늙어가는 손의 떨림이 없었다. 오직 데이터로 박제된 정점의 맛만이 무한히 복제되고 있었다.
“...못 먹겠어.”
성민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가장 그리웠던 맛인데, 입안에서 모래알처럼 겉돌았다.
그는 로봇 팔을 올려다보았다. 차가운 은색 금속은 아무런 표정 없이 대기 모드로 깜빡이고 있었다.
저 로봇은 나를 사랑해서 요리하는 게 아니다.
배가 고픈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묻지도 않는다.
그저 입력된 코드를 수행할 뿐이다.
갑자기 공포가 밀려왔다.
이 완벽한 김치찌개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인생은 이렇게 기계적인 데이터 몇 줄로 요약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성민은 충동적으로 부엌으로 달려가 소금 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완벽한 비율로 끓고 있는 국 냄비에 소금을 왈칵 쏟아부었다.
고춧가루도 닥치는 대로 뿌렸다.
“경고. 염도 초과. 레시피 이탈. 조치를 취합니까?”
로봇이 붉은빛을 내며 경고음을 울렸다.
“닥쳐! 그냥 끓여!”
성민이 소리쳤다.
로봇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국자를 저었다.
성민은 엉망이 된 국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짰다. 맵고 비렸다. 맛이 없었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끔찍한 맛을 느끼는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
짜고 맛없는 국물.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영역이었다. 실수가 허용되는, 그래서 살아있는 맛.
성민은 조용히 일어나 '마더-K’의 전원 코드를 뽑았다.
웅- 하는 팬 소리가 잦아들고, 주방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그는 싱크대 앞에 서서, 서툰 솜씨로 직접 칼을 잡았다.
손을 베일 수도 있고, 간을 못 맞출 수도 있다.
어머니의 맛은 영영 흉내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민은 삐뚤빼뚤하게 파를 썰기 시작했다.
도마 위로 탁, 탁, 둔탁하고 불규칙한 소리가 울렸다.
그제야 비로소, 진짜 어머니의 부엌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