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펫 시뮬레이터

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1 : 편집된 낙원

by 공감디렉터J


열 살 민준의 세상은 고글을 쓰는 순간 완성된다.
눈앞에 '초코’가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리며 앉아 있다. 3개월 전, 노환으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던 그 래브라도 리트리버다.

하지만 지금 민준의 앞에 있는 초코는 죽기 직전의 비쩍 마르고 털이 빠진 모습이 아니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황금빛 털, 초롱초롱한 눈망울, 넘치는 에너지. 민준이 가장 사랑했던 3살 때의 전성기 데이터로 복원된 모습이다.

민준은 검은색 햅틱 슈트(Haptic Suit) 장갑을 낀 손을 뻗었다.
“초코, 손!”
멍! 경쾌한 짖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앞발이 민준의 손바닥 위에 턱 얹혔다.
장갑의 압력 센서가 작동하며, 털의 부드러운 감촉과 체온, 그리고 개의 무게감을 민준의 손끝으로 전송했다.
따뜻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따뜻함.

“잘했어. 이번엔 굴러.”
초코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배를 보였다. 민준은 까르르 웃으며 초코의 배를 문질렀다. 햅틱 조끼가 진동하며 초코가 몸을 비비는 충격을 가슴팍으로 전달했다.


거실 문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 수진의 눈빛은 복잡했다.
맨눈으로 보는 거실 풍경은 기괴했다.
아들은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젓고,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뒹굴며 혼자 웃고 있었다.

검은색 전신 슈트를 입고 고글을 쓴 작은 아이가 텅 빈 공기와 교감하는 모습.

그것은 그리움이라기보다 일종의 접신(接神) 의식처럼 보였다.

“여보, 저거... 이제 그만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남편이 수진의 어깨를 감싸며 속삭였다.
“의사 선생님이 그랬잖아. 충분한 애도 기간이 필요하다고. 갑자기 뺏으면 충격받을 거야.”
“벌써 두 달이야. 민준이, 학교 끝나면 저거 하느라 친구들도 안 만나. 게다가...”

남편은 말을 아꼈지만, 수진도 알고 있었다. 민준이 초코를 대하는 방식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초코, 물어와!”
민준이 가상의 공을 던졌다. 초코가 질주했다.
그런데 거실 소파 모서리에 닿기 직전, 알고리즘의 충돌인지 초코가 살짝 버벅대며 벽을 통과해버렸다.

민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 진짜. 멍청해.”

민준은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눈앞에 홀로그램 메뉴창이 떴다.


[상호작용 오류 수정] -> [행동 패턴 재설정] -> [지능 지수: 상향 조정]


“야, 다시 해.”
민준의 목소리에서 애정은 사라지고 짜증이 묻어났다.
순식간에 좌표가 재로딩된 초코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완벽한 각도로 턴을 해서 공을 물어왔다.

“아니, 너무 빠르잖아. 귀여운 맛이 없네. 다시.”

핑-
초코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민준은 마치 게임 캐릭터 스탯을 찍듯 초코의 성격을 조작하고 있었다.
조금 더 애교 있게, 조금 덜 짖게, 털 날림 효과는 끄기.

수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거실로 들어갔다.
“민준아, 밥 먹어야지. 그만하고 벗어.”

민준은 고글을 쓴 채 고개만 돌렸다. 고글 표면의 LED가 차갑게 빛났다.
“잠깐만요. 초코 훈련 중이잖아요.”
“그건 진짜 초코가 아니야, 민준아. 초코는... 죽었잖아.”


금기어였다. 민준의 어깨가 굳었다.
“아니야. 여기 있잖아. 냄새도 안 나고, 똥도 안 싸고, 아프지도 않아. 옛날 초코는 냄새나서 싫었어. 토하고, 낑낑대고... 걘 불량품이었어.”

수진은 숨이 턱 막혔다.
불량품? 10년을 함께 산 가족에게 할 소리인가?
“김민준! 말 조심해. 생명이 어떻게 불량품이야? 늙고 아픈 건 당연한 거야.”

“싫어! 아픈 건 싫어! 귀찮아!”
민준이 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저었다. 그 바람에 햅틱 센서가 오작동해 초코가 깨갱거리며 바닥에 엎드렸다.
민준은 넘어진 초코를 일으켜 세우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대신 메뉴창을 열었다.

“엄마 때문에 버그 났잖아!”

수진은 다가와 민준의 고글을 억지로 벗기려 했다.
“벗어! 당장 벗어! 이거 갖다 버릴 거야!”

“하지 마! 내 돈으로 결제한 거야!”
“이건 사랑이 아니야, 중독이야!”

실랑이 끝에 고글이 반쯤 벗겨졌다.
민준의 맨눈이 드러났다. 눈물이나 슬픔은 없었다.
대신 자신의 완벽한 놀이가 방해받은 것에 대한 섬뜩한 분노만이 가득했다.
그의 시선은 엄마가 아니라, 반쯤 흐릿해진 홀로그램 강아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버그로 인해 초코의 데이터가 깨져 다리가 뒤틀린 채 짖고 있었다.
멍... 으르르... 캉!
기괴한 소음이 스피커를 찢었다.
민준은 그 ‘고장 난’ 강아지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마치 렉 걸린 게임 화면을 보듯이.

그리고 아주 담담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삭제해.”

순간, 정적이 흘렀다.
수진의 손이 멈췄다.

“뭐... 뭐라고?”

민준은 귀찮다는 듯 고글을 완전히 벗어 소파에 던졌다.
“버그 났잖아요. 시끄럽고 징그러워요. 그냥 지우고 새 모델 다운받을래요. 이번엔 고양이로 할까 봐.”

팟-
홀로그램이 꺼졌다.


뒤틀려 짖어대던 초코는 흔적도 없이, 비명도 없이, 데이터의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텅 빈 거실.
민준은 밥을 먹으러 식탁으로 향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수진만이 멍하니 서서, 아들이 방금 '삭제’해버린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느낀 공포는, 아들이 개를 지웠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언젠가 자신이 늙고 병들어 아들에게 '버그’처럼 느껴지는 날이 온다면.
아들은 자신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어떤 버튼을 누를지, 상상해버렸기 때문이다.

식탁에서 민준이 투정 부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국이 식었잖아. 다시 데워줘. 따뜻하게.”

수진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리셋이 불가능한 현실의 밥상은, 아들에게 얼마나 불완전해 보일까.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