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 꿈을 팝니다

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1 : 편집된 낙원

by 공감디렉터J


“어서 오십시오. '오니로스(Oneiros)'입니다. 오늘은 어떤 밤을 원하시나요?”

희미한 조명이 깔린 고급스러운 상담실. 상담원인 AI 안드로이드는 완벽한 황금 비율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VIP 고객인 태주는 소파에 깊숙이 기대며 피곤한 눈을 비볐다.
불면증.
성공의 대가로 얻은 고질병이었다. 수면제를 먹어도 꿈속에서조차 주식 그래프가 춤을 추고, 폭락하는 숫자들에 쫓기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기 일쑤였다. 현실의 스트레스가 꿈까지 침범한 지 오래였다.

“가장 비싼 걸로. ‘S-클래스: 절대 자유’ 패키지. 저번에 말한 거, 업데이트됐나?”

“물론입니다, 고객님. 이번 버전 4.0은 뇌의 렘수면 단계를 해킹해 물리법칙, 도덕, 인과율을 완벽하게 무시할 수 있는 '루시드 드림(Lucid Dream)의 끝판왕’입니다. 원하시는 모든 것이 현실보다 더 생생한 4D 감각으로 구현됩니다. 시간 왜곡 기술도 적용되어, 현실의 8시간이 꿈속에서는 일주일처럼 느껴지실 겁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접속해.”

그는 ‘드림 캡슐’ 안에 누웠다. 차가운 젤이 발린 전극들이 관자놀이에 부착되었다.
위잉-
기분 좋은 진동과 함께 의식이 흩어졌다.

눈을 뜨니, 그는 절벽 위에 서 있었다.
발아래로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태주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짠내 섞인 바다 향기. 현실의 미세먼지 가득한 공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망설임 없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추락의 공포? 아니, 짜릿함이었다.
땅에 곤두박질치기 직전, 그는 생각만으로 날개를 돋게 했다. 등 뒤에서 거대한 독수리의 날개가 솟아올랐고, 그는 바람을 가르며 창공으로 솟구쳤다.
중력은 그의 장난감이었다.

꿈속에서 태주는 신(神)이었다.
손가락을 튕기면 사막 한가운데에 최고급 호텔이 솟아올랐다. 현실에서는 이혼 소송 중인 아내 대신, 그를 숭배하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그를 둘러쌌다. 먹고 싶었던 최고급 스테이크를 씹으면 육즙이 혀를 감쌌지만, 배는 부르지 않았다. 살찔 걱정도 없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때려도, 건물을 부수어도 경찰은 오지 않았다. 주가 폭락도, 세무 조사도, 늙어가는 육체도 이곳엔 없었다.

일주일 같은 8시간이 흘렀다.
꿈속의 낙원에서 그는 영원히 왕으로 군림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늘이 붉게 찢어지며 경고 메시지가 떴다.


'기상 시간 10분 전. 렘수면 주기가 종료됩니다.'


“벌써? 안돼... 조금만 더...”
태주는 절규하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세계가 모자이크처럼 부서지기 시작했다.

“헉!”
태주는 캡슐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현실이었다.
축축한 식은땀, 뻐근한 목, 그리고 머리맡에서 울려대는 스마트폰의 진동.
비서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대표님, 오늘 오전 9시 이사회 긴급 소집입니다. 3분기 실적 방어 대책 준비하셔야...'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방금 전까지 하늘을 날던 그가, 이제는 꽉 막힌 강남대로에서 차 안에 갇혀 있어야 한다.
그를 숭배하던 미녀들 대신, 표독스러운 아내의 변호사가 보낸 내용증명이 책상 위에 놓여 있을 것이다.
이 무겁고, 냄새나고, 골치 아픈 '현실’이라는 감옥.

태주는 캡슐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했다.
“다시 넣어줘. 연장해!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

상담원 안드로이드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고객님, 1일 권장 접속 시간은 8시간입니다. 초과 접속 시 현실 인지 능력에 심각한 해리(Dissociation) 현상이 발생할 수 있으며...”

“닥쳐! 내가 고객이야! 당장 다시 연결해!”
태주는 발작하듯 소리치며 캡슐 문을 닫으려 했다.
현실은 그에게 있어 악몽이었고, 기계가 만들어준 가짜 꿈만이 유일한 현실이었다.

그때였다.
상담실 문이 열리고, 태주의 아내와 비서가 들어왔다.
“여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이사회 시간 다 됐어!”
“대표님, 지금 가셔야 합니다!”

태주는 그들을 쳐다봤다.
그들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저것들은... 버그야. 악성 코드라고. 내 낙원을 방해하는 바이러스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태주의 뇌는, 현실의 인물들을 '삭제해야 할 몬스터’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태주는 눈을 번뜩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테이블 위에 놓인 무거운 크리스털 재떨이가 눈에 들어왔다. 꿈속에서는 저걸 휘두르면 적들이 팝콘처럼 터져나갔었다.

“삭제... 삭제해야 돼...”

태주가 재떨이를 집어 들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이곳에 없었다.
그는 여전히 꿈속의 전능한 신이었고, 눈앞의 아내와 비서는 처리해야 할 NPC일 뿐이었다.

“꺼져! 내 세계에서 나가란 말이야!”

쨍그랑-
태주가 휘두른 재떨이가 상담실의 거울을 깨뜨렸다. 파편이 튀고 비명이 울렸다.
그는 자신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것이라 믿으며, 깨진 유리창 너머 15층 아래의 허공을 향해 몸을 던지려 했다.
자신을 옥죄는 중력이란, 그저 깰 수 있는 설정값에 불과하다고 믿으면서.

안드로이드 경비원들이 달려와 태주를 제압했다.
바닥에 짓눌린 태주는 허우적거리며 울부짖었다.
“로그아웃! 로그아웃 시켜줘! 이 지옥에서 내보내 줘! 거기가 진짜야... 거기가...”


그는 현실에서 로그아웃하고 싶어 발버둥 쳤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곳은 리셋 버튼도, 고객 센터도 없는 잔혹한 '리얼 월드’였다.
바닥에 눌린 그의 뺨 위로, 4D가 아닌 진짜 차가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