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1 : 편집된 낙원
“이건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명백한 조작이에요!”
장남 정훈이 변호사 사무실의 마호가니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차녀 수연은 팔짱을 낀 채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오빠, 인정할 건 인정해. 아버지는 오빠가 도박으로 회사 돈 날려 먹었을 때부터 이미 마음 떠나셨어.”
두 사람 사이에는 대형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화면 속에는 3일 전 작고한 강 회장이 병상에 앉아 쉰 목소리로 유언을 남기고 있었다.
“...내 전 재산인 주식 60%와 부동산 일체를 둘째 딸, 강수연에게 상속한다. 장남 정훈에게는... 일체의 상속분을 남기지 않겠다. 녀석은 나를 너무 실망시켰어...”
영상 속 강 회장은 눈물을 훔치며 떨리는 손으로 인감을 찍는 시늉까지 했다. 화질, 음성, 입 모양, 심지어 특유의 왼쪽 눈썹을 씰룩이는 버릇까지 완벽했다. 누가 봐도 강 회장이었다.
하지만 정훈은 품에서 태블릿 PC를 꺼냈다.
“웃기지 마. 내가 가진 건 달라.”
정훈이 재생한 영상 속 강 회장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배경은 같은 병실, 같은 환자복이었지만 내용은 정반대였다.
“...수연이는 야망이 너무 커서 회사를 망칠 아이다. 내 모든 경영권과 재산은 장남 정훈에게 물려준다. 수연에게는 한 푼도 주지 마라...”
변호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두 개의 영상을 번갈아 보았다.
둘 다 원본(Raw Data) 파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메타데이터 분석 결과, 두 영상 모두 촬영 일시와 장소가 동일했다. 심지어 디지털 서명 값까지 일치했다.
둘 중 하나는, 아니 어쩌면 둘 다 AI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딥페이크’였다.
법정 공방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최초의 딥페이크 유언 소송’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판사는 인간이 아니었다. AI 판사 '솔로몬 3.0’이 재판석에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푸른 빛을 내는 서버 타워가 판사석에 놓여 있었다.) 인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데이터로만 진실을 가린다는 명목이었다.
검증 과정은 치열했다.
정훈 측 기술 자문단은 수연의 영상을 공격했다.
“프레임 단위로 분석한 결과, 3분 12초경 강 회장의 동공 반사 각도가 조명 위치와 0.5도 어긋납니다. 이건 그래픽으로 덧입혔다는 증거입니다!”
수연 측도 지지 않았다.
“정훈 씨 영상은 음성 파형에서 미세한 기계적 노이즈가 검출되었습니다. 딥보이스 생성기 특유의 패턴이죠!”
서로가 서로를 '가짜’라고 증명하는 진흙탕 싸움.
하지만 그 누구도 ‘진짜’ 유언이 무엇인지는 증명하지 못했다.
강 회장은 죽기 전 6개월 동안 치매와 실어증을 앓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제정신일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오직 그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남매는 아버지가 살아생전 했던 말들을 데이터베이스에 넣고,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아버지’를 재창조해낸 것이다.
정훈의 AI 아버지는 아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였고,
수연의 AI 아버지는 딸의 능력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아버지였다.
두 개의 가짜 아버지가 법정에서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판결의 날.
AI 판사 솔로몬 3.0이 결론을 내렸다. 법정 내의 스피커에서 중성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판결문
피고와 원고가 제출한 영상 A, B 모두 '딥페이크 생성 알고리즘’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판명됨. (일치율 99.9%의 조작 흔적 발견)
고인 강 회장은 사망 전, 이미 자신의 뇌 스캔 데이터를 '국가 공인 디지털 금고’에 업로드한 기록이 확인됨.
이에 재판부는 두 자녀가 제출한 조작된 영상을 기각하고, 강 회장의 '디지털 뇌’를 일시적으로 깨워 직접 심문하기로 결정함.
정훈과 수연의 얼굴이 동시에 사색이 되었다.
“뇌... 뇌를 깨운다고요?”
법정 중앙에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작동했다.
강 회장의 뇌 신경망을 기반으로 복원된 디지털 인격체가 푸른빛을 띠며 허공에 떠올랐다.
그는 늙고 병든 모습이 아닌, 가장 명석했던 50대의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아버지!”
“회장님!”
디지털 강 회장은 무심한 눈으로 두 자녀를 내려다보았다.
“너희들이 내 유산을 놓고 싸우느라 내 가짜 영상까지 만들었다고? 참으로... 가관이구나.”
그는 AI 판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판사 양반, 내 진짜 유언은 이겁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나는 내 자식 놈들이 얼마나 돈에 미쳐있는지 잘 안다. 내가 죽으면 분명 서로 물어뜯고 싸우겠지. 그래서 나는 내 뇌를 스캔할 때, ‘유산 상속 조건 알고리즘’을 하나 심어뒀지.”
디지털 강 회장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내 전 재산 5,000억 원은 사회에 전액 환원한다. 단, 너희 둘 중 한 명이라도 '상속 포기 각서’를 쓰고, 형제에게 미안하다고 진심으로(심박수 및 거짓말 탐지기 통과 조건) 사과하는 자에게는... 내 개인 비자금 100억을 주겠다.”
정훈과 수연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재판장의 AI는 즉시 계산을 시작했다.
상속 딜레마 게임 개시. 제한 시간 10분.
“자, 선택해라. 빈털터리가 될지, 자존심을 버리고 100억이라도 챙길지.”
강 회장의 홀로그램이 껄껄 웃으며 사라졌다.
법정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서로를 죽일 듯이 증오하던 남매는 이제 선택해야 했다.
가짜 유언장으로 서로를 속이려던 그들이, 이제는 기계가 설계한 잔혹한 진실 게임 앞에서 발가벗겨졌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천만의 말씀.
데이터가 된 죽은 자는 산 자보다 더 시끄럽고, 더 영리하며, 훨씬 더 잔인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