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부. 아이돌 메이커

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1 : 편집된 낙원

by 공감디렉터J


서울 외곽의 허름한 소주집.
벽에 붙은 TV에서는 가요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건 11인조 걸그룹 ‘네오-엔젤스(Neo-Angels)’.
인형 같은 이목구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완벽한 군무, 그리고 절대 음이탈이 나지 않는 목소리.
그들은 100% AI로 생성된 가상 아이돌이었다.


“사장님, 한 병 더 주세요.”

기획사 대표 만석은 소주잔을 비우며 한숨을 쉬었다.
그의 앞에는 세 명의 연습생이 앉아 있었다. 민지, 소라, 다혜.
셋 다 빼어난 미모와 실력을 갖췄지만, 3년째 데뷔를 못 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데뷔할 무대’가 사라졌다.

“대표님... 저희 이번 오디션도 떨어졌어요?”
맏언니 민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석은 차마 그들의 눈을 볼 수 없어 고개를 떨궜다.
“미안하다. 이번에도... AI 백댄서만 뽑는단다.”

세 사람의 어깨가 축 처졌다.


요즘 방송가는 '인간 리스크’를 극도로 꺼렸다.
열애설, 학폭 논란, 마약, 하다못해 감기에 걸려 스케줄을 펑크 내는 인간은 '비효율적’이었다.
반면 AI 아이돌은 24시간 라이브 방송이 가능했고, 365일 팬들과 1:1 채팅을 해줬으며, 늙지도 살찌지도 않았다.

이제 인간 연습생에게 남은 자리는 딱 하나였다.
AI 아이돌의 리얼함을 강조하기 위해 뒤에서 춤추는 ‘인간 배경’.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려면, 진짜가 가짜처럼 배경이 되어줘야 하는 아이러니한 시대였다.

“그거라도... 할까요?”
막내 다혜가 울먹이며 말했다.
“저 연습생만 5년 했어요. 이제 알바하기도 지쳤어요. 그냥 얼굴 가리고 춤추는 거라도 하면... 출연료는 나오잖아요.”

“야, 김다혜! 자존심도 없어? 기계 따가리나 하려고 우리가 그 고생을 했어?”
소라가 소리쳤지만,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만석은 가슴이 미어졌다.
한때 그는 '미다스의 손’이라 불렸다. 사람 냄새 나는 가수, 감성적인 발라더들을 키워냈다.
하지만 이제 대중은 사람 냄새를 싫어했다. 그들은 결점 없는 플라스틱 인형을 원했다.

“한 잔만 더 하고 가자.”
만석이 소주병을 들었다.


며칠 뒤, 네오-엔젤스의 단독 콘서트장.
화려한 홀로그램 무대 뒤편 어둠 속에 민지, 소라, 다혜가 서 있었다.
그들은 얼굴을 가리는 검은 마스크와 펑퍼짐한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그들의 역할은 ‘그림자 댄서 1, 2, 3’.

큐!
음악이 시작되자, 화려한 조명이 센터에 선 AI 멤버 '리나’를 비췄다.
리나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관객석에서는 야광봉의 물결과 함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민지와 아이들은 리나의 뒤에서 묵묵히 몸을 움직였다.
땀이 흘러내려 마스크 안이 축축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들의 땀방울을 보지 못했다. 그저 리나의 화려한 그래픽 효과에 열광할 뿐이었다.

공연 중반, 발라드 타임이 되었다.
AI 리나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서버 랙(Lag)으로 인해 리나의 홀로그램이 0.5초간 멈칫했다.
반주와 노래의 싱크가 어긋났다. 관객석이 술렁였다.

“어? 렉 걸렸다.”
“아 뭐야, 몰입 깨지게.”

그 순간이었다.
무대 뒤에 있던 민지가 코러스용으로 켜져 있던 마이크를 잡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리나의 멈춘 파트를 치고 들어갔다.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널 지켜줄게...”

민지의 목소리였다.
기계처럼 매끄럽지는 않지만, 떨림이 있고, 호흡이 섞인, 거칠지만 따뜻한 진짜 사람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정적을 뚫고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갔다.

관객들이 조용해졌다.
홀로그램 리나는 여전히 멍하니 서 있었다.
하지만 민지의 노래는 계속되었다. 소라와 다혜도 화음을 넣기 시작했다.

어둠 속, 얼굴 없는 그림자들의 합창.
그것은 화려한 그래픽보다 더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관객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야... 저거 라이브야?”

노래가 클라이맥스로 치닫자, 만석은 무대 아래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눈물이 흘렀다.
‘그래, 저게 진짜지. 저게 가수지.’

노래가 끝나자, 1초간의 정적 후 폭발적인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오류 난 AI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무대 뒤편, 어둠 속에 서 있는 이름 모를 세 명의 사람을 향한 박수였다.

비록 조명은 여전히 AI를 비추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림자가 빛보다 더 빛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
만석은 땀범벅이 된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잘했다. 진짜 잘했어.”

민지가 마스크를 벗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엉망이었지만, 어떤 AI보다 아름다웠다.
“대표님, 저희... 다시 시작해요. 밑바닥부터라도 좋으니까, 진짜 우리 노래 해요.”

만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은 변했고, 기계가 별이 되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별이 빛나려면 밤하늘이 있어야 하는 법.
어쩌면 인간은 이제 가장 깊고 짙은 밤이 되어, 진짜 빛의 의미를 증명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소주 한 잔의 쓴맛 뒤에 오는 달큰함처럼,
그들의 진짜 무대는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예고] 더 프롬프트 시즌 2 : 넥스트 휴먼 (The Next Human)


일상의 변화를 넘어, 이제 AI는 당신의 ‘밥줄’을 노립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파도에 휩쓸리고, 누군가는 파도 위에 올라탑니다.

해고 통지서를 받은 다음 날, 자신의 뇌를 코딩해 '분신’을 만든 김 부장.
주식 시장을 지배한 알고리즘에 맞서, 인간의 광기로 '떡상’을 노리는 트레이더.
로봇이 짓는 아파트 현장에서 유일한 인간 관리자가 목격한 기계들의 은밀한 대화.

단순 노동이 사라진 시대. 살아남기 위해 기계보다 더 기계처럼, 혹은 그 누구보다 인간답게 진화해야 하는
직업인들의 치열하고 통쾌한 생존기가 펼쳐집니다.

“당신은 대체될 것인가, 아니면 지배할 것인가?”

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 2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