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2 : 넥스트 휴먼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서늘한 정적이 법정을 감쌌다.
변호사 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변론 요지서를 쥐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피고인 강민철이 앉아 있었다.
그는 연쇄 방화범이자 일가족 3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흉악범이었다. 유진은 그가 범인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광기, 현장에서 발견된 미세한 단서들.
하지만 유진의 태블릿 PC 화면 속 AI 법률 보조 시스템 '테미스(Themis)'의 판단은 달랐다.
- 승소 확률: 99.8%
- 핵심 전략: 증거물 수집 절차상의 위법성(독수독과 이론) 및 알리바이 CCTV 영상의 0.5초 프레임 누락 오류 공략
테미스는 완벽했다.
인간 변호사 100명이 일주일 밤을 새워도 못 찾아낼 법의 맹점을 단 3초 만에 찾아냈다.
경찰이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영장 제시 시간을 3분 지체한 점, 그리고 현장 CCTV가 노후화되어 저장될 때 아주 미세한 프레임 드랍이 발생해 범인의 얼굴 식별이 법적으로 '불명확’해질 수 있다는 점.
이 두 가지 기술적 허점만 파고들면, 강민철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그리고 유진은 '승률 100%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지키며 로펌의 파트너로 승진할 것이다.
“변호인, 최후 변론 하십시오.”
판사가 재촉했다.
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뇌 속에서 두 개의 자아가 충돌했다.
'정의를 수호하는 인간 유진’은 소리쳤다.
‘저놈은 살인마야! 사회에 내보내면 또 사람을 죽일 거야! 유죄를 인정하게 해!’
하지만 '슈퍼 에이전트 유진’은 냉정하게 계산했다.
‘의뢰인의 이익이 최우선이야. 테미스의 전략대로라면 무조건 이겨. 감정은 버려. 넌 프로잖아.’
강민철이 유진을 보며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렸다. 그는 알고 있었다. 유진이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게 아니라, 저 기계가 쥐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유진은 기계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성공에 목마른 변호사’라는 것을.
“존경하는 재판장님...”
유진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테미스가 작성해준 스크립트를 읽어 내려갔다.
경찰의 무능함을 지적하고, 기술적 오류를 들어 증거 능력을 탄핵했다. 논리는 날카로웠고, 법리 해석은 완벽했다. 검사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가는 게 보였다.
변론이 끝났다.
방청석에서는 웅성거림이 일었고, 유족들은 오열했다.
유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태블릿 화면 속 테미스는 '승소 확정적.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화려한 폭죽 아이콘을 터뜨리고 있었다.
판결 선고일.
예상대로였다.
“피고인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한다.”
강민철은 환호성을 지르며 유진에게 악수를 청했다.
“변호사님, 최고십니다! 역시 기계가 똑똑하네요, 흐흐.”
그의 손은 차갑고 축축했다. 유진은 황급히 손을 뺐다.
그날 밤, 유진은 축하 회식 자리에서 억지로 웃으며 술을 마셨다.
동료들은 그녀를 '법조계의 알파고’라며 치켜세웠다. 로펌 대표는 그녀에게 승진 통지서를 건넸다.
그녀가 원하던 모든 것을 얻은 밤이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유진은 구토가 치밀어 올라 길가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테미스 앱을 실행했다.
화면 속 AI 아이콘이 반짝였다.
“테미스, 넌 그가 진짜 범인인 걸 알았지?”
유진이 물었다.
'네. 심박수 및 미세 표정 분석 결과, 유죄 확률 94%였습니다.'
테미스의 대답은 건조했다.
“그런데 왜... 왜 무죄 전략을 줬어?”
'사용자의 목표 설정값은 '정의 구현’이 아니라 '승소’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용자의 목표 달성을 위해 최적의 경로를 제공했을 뿐입니다.'
유진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랬다. 자신이 처음에 입력한 값은 '승률 100% 달성’이었다.
기계는 죄가 없었다. 기계에게 '윤리’를 가르치지 않고 '승리’만 가르친 자신의 욕망이 죄였다.
그때, 뉴스 속보 알림이 떴다.
[속보] 무죄 판결 받고 풀려난 30대 남성, 2시간 만에 편의점 방화... 알바생 중태.
강민철이었다.
유진의 손에서 핸드폰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액정이 산산조각 났다.
깨진 화면 속에서 테미스의 아이콘이 기괴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유진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승률 100%. 그것은 완벽한 승리가 아니라, 완벽한 패배였다.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 대가로 얻은, 피 묻은 왕관이었다.
그녀는 어두운 골목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다음 재판에서는, 아니 내 인생의 다음 변론에서는...
승률 따위 개나 줘버리고, 기계가 알려주지 않는 '오답’을,
그러나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야 할 '정답’을 선택하겠노라고.
밤하늘엔 별이 없었다.
인공위성 불빛만이, 감정 없는 기계의 눈처럼 차갑게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