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무인 병동의 밤

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2 : 넥스트 휴먼

by 공감디렉터J


새벽 2시. 대학병원 외상센터는 거대한 기계실처럼 웅웅거리고 있었다.
이곳에 인간 의사는 없다.
모든 수술과 진단은 의료 AI 시스템 '아스크레피오스(Asclepius)'가 통제하는 로봇 팔들이 수행한다. 0.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함, 피로를 모르는 지구력.

인간은 그저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 감시하는 ‘관리자’ 몇 명만 있으면 충분했다.

덕수는 그 '관리자’도 아니었다.
그의 직함은 ‘환경미화원 겸 시설 관리 보조’.
쉽게 말해 청소부였다.
쉰이 넘은 나이, 구부정한 등, 닳아빠진 안전화. 그는 묵묵히 로봇들이 흘린 오일이나 폐기물을 치우며 밤을 보냈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3구역 수술실.”
건조한 안내 방송이 울렸다. 덕수는 걸레를 짜다 말고 모니터를 힐끔 쳐다봤다.
교통사고로 실려 온 환자였다. 복부 출혈이 심각해 보였다.
수술 로봇 '암(Arm)-X’가 6개의 팔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환자의 배를 갈랐다. 모니터에는 생존 확률 42%라는 숫자가 붉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로봇 팔이 멈췄다.
삐- 삐-
경고음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알 수 없는 장기 손상 발견. 데이터베이스 매칭 실패. 수술 알고리즘 대기 중.


환자의 장기 위치가 일반인과 다른 '내장 역위증(Situs Inversus)'이었다. 매우 드문 케이스라 AI의 학습 데이터에서 우선순위가 밀려 있었던 모양이다. AI는 혼란에 빠져 판단을 유보했다.
중앙 관제실의 젊은 시스템 엔지니어는 당황했다.
“어? 뭐야, 왜 멈췄어? 매뉴얼 찾아봐! 재부팅 해야 하나?”
그는 의학 지식이 없는 IT 전문가였다. 기계를 고칠 줄은 알았지만, 사람을 살리는 법은 몰랐다.

혈압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골든타임이 1분도 채 남지 않았다.
엔지니어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수술실 유리창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덕수가 대걸레를 내팽개쳤다.

“비켜!”
덕수는 엔지니어를 밀치고 제어 콘솔 앞에 섰다.
“아저씨! 미쳤어요? 거긴 손대면 안 돼요!”

덕수는 무시하고 수동 조작 레버를 잡았다.
그의 손은 투박하고 거칠었지만, 레버를 쥔 그립감은 묘하게 익숙해 보였다.


사실 덕수는 20년 전, 이 병원의 전설적인 흉부외과 전문의였다.
의료 AI가 도입되던 초창기, 기계의 오판으로 아내를 잃은 뒤 병원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메스를 놓았다.

그 후 신분을 숨기고 병원 청소부로 취직해, 기계가 지배한 이 차가운 공간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좌측 신장 위치 확인. 비장 파열... 여기군.”
덕수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모니터를 보며 수동으로 로봇 팔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AI의 부드러운 움직임과는 달랐다. 투박하지만 거침없고, 과감했다.

엔지니어는 입을 딱 벌렸다.
청소부 아저씨가 수십억짜리 수술 로봇을 마치 자신의 손처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혈관 클램핑... 지혈 완료. 봉합 시작.”

덕수는 땀을 흘리며 레버를 돌렸다.
손끝의 감각은 없었다. 차가운 기계장치를 통해 전해지는 진동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수천 번의 수술 경험이 시뮬레이션되고 있었다.
피 냄새, 살 타는 냄새, 생명이 꺼져갈 때의 그 서늘한 공기.
AI는 데이터로만 아는 그것들을, 덕수는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띠- 띠- 띠-
심전도 모니터의 불규칙하던 파형이 안정을 되찾았다.
혈압 정상 범위 진입.
생존 확률 42%가 95%로 치솟았다.

“됐다.”
덕수는 레버에서 손을 뗐다.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엔지니어는 멍하니 모니터와 덕수를 번갈아 보았다.
“아저씨... 당신 대체 누구예요?”

덕수는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꾸겨진 담배를 꺼내 물려다, 금연 구역임을 깨닫고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구부정한 청소부의 등으로 돌아갔다.
“청소나 마저 해야지. 바닥이 엉망이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걸레를 다시 집어 들었다.
병원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 위로,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이 내려앉았다.


다음 날, 병원은 발칵 뒤집혔다.
AI가 해결 못 한 희귀 케이스를 살려낸 '미지의 명의’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CCTV에는 그저 늙은 청소부가 기계실을 잠시 서성이다 나가는 모습만 찍혀 있을 뿐, 수술 장면은 '시스템 오류’로 인해 녹화되지 않았다. (덕수가 수술 직전 보안 카메라 코드를 뽑아버렸기 때문이다.)

병원장은 시스템 오류를 수정하고 AI를 업그레이드하라고 지시했다.
아무도 그날 밤, 기계의 차가운 손을 빌려 사람의 뜨거운 심장을 다시 뛰게 한 것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덕수는 여느 때처럼 쓰레기통을 비우며 로봇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수술실을 바라보았다.
“잘해라, 깡통들아. 생명은 데이터 쪼가리가 아니야.”

그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병동의 어둠 속으로,
진정한 수호자의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