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2 : 넥스트 휴먼
“작가님, 이번 신작 초고 완성됐습니다. 확인해보시죠.”
베스트셀러 작가 서준(38세)의 작업실.
그의 앞에 놓인 노트북 화면에는 AI 집필 보조 프로그램 '뮤즈(Muse) X’가 깜빡이고 있었다.
서준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엔터키를 눌렀다.
화면에 텍스트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 제1장. 붉은 달의 서막...
문장은 유려했고, 묘사는 치밀했으며, 플롯은 완벽했다. 서준이 입력한 건 고작 세 줄의 시놉시스뿐이었다.
‘기억을 잃은 살인청부업자. 미래 도시. 잃어버린 딸을 찾는다.’
이 진부한 소재를 뮤즈는 단 10분 만에 300페이지 분량의 걸작 스릴러로 뽑아냈다.
“좋네. 문체만 좀 더 '내 스타일’로 다듬어.”
서준이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작가님 특유의 ‘건조하고 냉소적인 문체’ 가중치를 20% 높여 수정합니다.”
서준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데뷔 초, 한 문장을 쓰기 위해 밤을 새우고 담배를 피워대던 고통은 이제 옛말이었다.
그는 이제 '작가’라기보다 ‘편집자’ 혹은 '감독’에 가까웠다.
AI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 자신의 이름으로 내보내면 그만이었다.
대중은 열광했고, 평론가들은 "서준의 문장은 날이 갈수록 깊어진다"며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서준의 가슴 한구석은 늘 텅 비어 있었다.
그것은 창작의 기쁨이 거세된, 껍데기뿐인 성공이었다.
어느 날, 출판사 편집장이 찾아왔다.
“작가님, 이번에 특별 기획으로 ‘친필 에세이’ 한 편 부탁드려요. AI 도움 전혀 없이, 작가님이 직접 손으로 쓴 짧은 글이요. 독자들이 작가님의 '진짜 체온’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서준은 덜컥 겁이 났다.
AI 없이 글을 써본 지가 5년이 넘었다.
“아... 뭐, 어렵지 않죠. 주제는?”
“자유 주제입니다. 편하게 써주세요.”
편집장이 돌아간 뒤, 서준은 만년필을 꺼냈다.
하얀 원고지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펜촉을 종이에 댔다.
‘나는...’
그다음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굳어버렸다.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문장을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마치 걸음마를 잊어버린 어른처럼, 그는 문법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밥을... 아니, 날씨가...’
쓰레기 같은 문장들만 맴돌았다.
손이 떨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자신이 '언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그의 뇌는 '생각하는 근육’을 쓰지 않아 퇴화해버린 것이다.
뮤즈에게 키워드만 던져주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스스로 문장을 조립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젠장! 젠장!”
서준은 만년필을 집어 던졌다. 잉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는 노트북을 열고 뮤즈를 실행했다.
“야, 에세이 하나 써줘. 주제는 ‘글쓰기의 고통’. 아주 처절하고 인간적으로.”
뮤즈는 0.1초 만에 답을 내놓았다.
...하얀 종이 앞에서 나는 벌거벗은 죄인이 된다. 잉크는 내 피요, 펜촉은 내 뼈와 같다...
완벽했다. 너무나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글이었다.
서준은 그 글을 보며 오열했다.
자신이 느끼는 이 비참한 감정조차, 기계가 더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마저 기계에게 '표절’당하고 있었다.
서준은 그 에세이를 출판사에 보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뮤즈를 삭제했다.
그리고 다시 원고지 앞에 앉았다.
‘나는... 글을 쓸 수 없다.’
한 시간을 끙끙대며 쓴 첫 문장.
투박하고 멋대가리 없는 문장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그 문장을 쓰다듬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하지만... 다시 배우고 싶다.’
두 번째 문장을 쓰는 데는 30분이 걸렸다.
그는 밤새도록, 유치원생처럼 더듬거리며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갔다.
그것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이라기엔 형편없었지만,
5년 만에 처음으로 서준의 '영혼’이 묻어난 진짜 글이었다.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다.
서준의 손에는 잉크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 더러워진 손을 보며, 그는 비로소 자신이 다시 '작가’가 되었음을 느꼈다.
비록 형편없는 작가일지라도, 적어도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인간이 된 것이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