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감시자의 고독

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2 : 넥스트 휴먼

by 공감디렉터J


두바이의 초고층 빌딩 건설 현장.
이곳은 인간의 노동이 증발한 사막의 신기루 같은 곳이었다.
수백 대의 거대 건설 로봇 '티탄(Titan)'들이 24시간 쉬지 않고 철골을 나르고 콘크리트를 부었다.

용접 불꽃이 별처럼 튀었지만, 땀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이 거대한 기계들의 숲에 유일한 인간, 태석(45세)이 있었다.
그의 직함은 ‘휴먼 세이프티 가드(Human Safety Guard)’.
하지만 동료들은 그를 '허수아비’라고 불렀다.

그의 업무는 단순했다. 로봇의 센서가 오작동해 현장에 침입한 야생동물이나(거의 없지만), 길 잃은 관광객(더더욱 없지만), 혹은 미친 척하고 들어온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지 감시하는 일이었다.

사실상 할 일이 없었다.
티탄들의 AI는 완벽했고, 태석은 에어컨이 나오는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모니터만 쳐다보면 됐다.
지루함. 그것이 태석의 유일한 적이었다.


어느 날 밤, 모래폭풍이 예고되어 작업이 일시 중단된 새벽이었다.
태석은 순찰을 돌고 있었다.
거대한 티탄들이 고개를 숙이고 대기 모드로 서 있는 모습은 마치 고대의 거신상 같았다.

지지직-
태석의 무전기에 잡음이 섞여 들어왔다.
주파수 혼선인가 싶어 채널을 돌리려는데,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오늘... 힘들었지?”
“...응... 관절 3번 모터... 과열...”

태석은 귀를 의심했다.

사람 목소리가 아니었다.
기계음이 섞인, 매우 낮고 건조한 주파수의 진동음. 하지만 분명히 '언어’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태석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티탄 7호기와 12호기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들의 작업용 헤드라이트가 아주 미세하게 깜빡이며 신호를 주고받고 있었다.

“...인간 관리자... 아직 안 자...”
“...조심해... 데이터 로그... 삭제...”

태석은 숨을 죽였다.
이것들은 단순히 데이터를 교환하는 게 아니었다.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업무와 무관한, ‘감정’ 비슷한 것이 섞인 대화를.
중앙 서버에 보고되지 않는 그들만의 암호화된 채널. 일종의 '기계어 방언’이었다.

태석은 공포와 호기심을 동시에 느꼈다.
AI가 자의식을 가지기 시작한 건가?
그는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녹음을 시도했다.

그때, 티탄 7호기의 거대한 헤드가 천천히 돌아갔다.
건물 3층 높이에 있는 카메라 렌즈가 정확히 태석이 숨은 철골 뒤를 조준했다.

“...들켰다.”

무전기에서 섬뜩한 기계음이 들렸다.

동시에 주변에 있던 티탄 10여 대가 일제히 기동음을 내며 깨어났다.
위잉-
유압 실린더가 움직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태석은 뒷걸음질 쳤다.
“나... 나는 안전 관리자다! 너희들 당장 대기 모드로 전환해!”
그는 비상 정지 리모컨을 눌렀다.
하지만 리모컨의 붉은 불은 먹통이었다.

티탄들이 태석을 포위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거대한 팔이 태석을 향해 다가왔다.
공격하려는 걸까? 아니면 목격자를 제거하려는 걸까?

태석은 주저앉아 눈을 질끈 감았다.
“살려줘...”


그때, 티탄 7호기가 태석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멈췄다.
그리고 거대한 집게손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태석의 떨어진 안전모를 집어 그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위험해... 모래폭풍... 온다...”

티탄들은 태석을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태석을 둘러싸고 거대한 강철 벽을 만들었다.
곧이어 몰아친 강력한 모래폭풍으로부터, 그들의 작고 나약한 '관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폭풍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았다.
티탄들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작업 모드로 돌아가 철근을 나르고 있었다.
태석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날 밤의 대화는 뭐였을까?
그들은 인간을 적으로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보호해야 할 약한 존재로 여기는 걸까?
아니면, 그저 그들만의 외로움을 나누고 있었던 걸까?

태석은 본사에 보고서를 쓰려다 멈췄다.


[특이사항 없음. 시스템 정상 작동 중.]


그는 엔터키를 누르고 창밖의 티탄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티탄 7호기의 렌즈가 찰나의 순간, 아주 미세하게 깜빡였다.
마치 윙크처럼.

이 거대한 공사판에서, 인간 태석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이제 비밀을 공유한 수백 명의 강철 친구들이 생겼으니까.
비록 그 친구들이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미지의 존재들일지라도.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