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트레이더의 광기

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2 : 넥스트 휴먼

by 공감디렉터J


여의도 증권가, 최상위 트레이딩 룸.
이곳은 인간의 출입이 통제된 '무인 서버실’에 가까웠다.
수천 대의 슈퍼컴퓨터가 0.0001초 단위로 주식을 사고팔았다. 전 세계 금융 시장은 '퀀트 AI(Quant AI)'들의 전쟁터였다. 인간의 느려터진 판단력은 이 초고속 시장에서 도태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단 한 곳, 구석진 사무실에서 인간 트레이더 '민혁(33세)'이 낡은 모니터 6대를 켜놓고 있었다.
그의 별명은 ‘트레이더 Z’.

AI가 지배한 시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전설적인 인간 단타 매매꾼이었다.


“오늘도 패턴이 똑같군.”
민혁은 컵라면을 후루룩 마시며 중얼거렸다.
화면 속 주가 그래프는 기계적인 파동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AI들은 서로의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역이용하며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시장 변동성은 극도로 낮아졌다. 대박도 없지만, 쪽박도 없는 지루한 시장.

민혁은 하품을 했다.
“재미없어. 판을 좀 흔들어볼까?”

그는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그의 전략은 간단했다. ‘미친 짓 하기’.
AI는 합리적이다. 그들은 확률과 통계, 그리고 '이성적인 투자자’를 전제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며, 확률적으로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면 어떻게 될까?


민혁은 전 재산을 털어 넣은 계좌를 열었다.
그리고 망해가는 제약회사 '바이오-X’의 주식을 풀 매수했다.
아무런 호재도 없었다. 임상 실험 실패로 상장 폐지 직전인 회사였다.
AI라면 절대 사지 않을 쓰레기 주식.

타닥, 탁!
주문이 들어갔다.
순간, 시장의 AI들이 혼란에 빠졌다.


'이상 거래 감지. 대규모 매수세 유입. 정보 비대칭 의심.'


AI들은 민혁의 행동을 '고급 내부 정보에 의한 선취매’로 오판했다.
“인간이 저렇게 큰돈을 걸 때는 확실한 정보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AI가 학습한 인간의 행동 패턴이었다.


순식간에 AI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바이오-X의 주가가 수직 상승했다.
상한가. 또 상한가.

민혁은 낄낄거렸다.
“걸려들었어, 멍청한 깡통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민혁은 주가가 최고점에 다다른 순간, 전량을 매도하지 않고 오히려 '추가 매수’를 감행했다.
그리고 주식 커뮤니티에 AI가 작성한 것처럼 보이는 가짜 뉴스(찌라시)를 퍼뜨렸다.


'바이오-X, 외계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 임박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지만, 키워드 매칭 알고리즘을 쓰는 뉴스 봇들이 이를 기사화하기 시작했다.

시장은 광기에 휩싸였다.

AI들은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며 폭탄 돌리기를 시작했다.
이성적인 알고리즘들이 집단 최면에 걸려 가장 비이성적인 버블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때, 민혁의 모니터에 경고 메시지가 떴다.


'금융감독원 AI 감사 시스템: 불공정 거래 의심 계좌 동결 경고.'


“아, 이제야 오시나.”
민혁은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이제 빠져나갈 타이밍이었다.
그는 매도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지금 팔면 수익률 5000%. 인생 역전이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모니터 속 붉은색 상승 그래프가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도파민이 뇌를 지배했다.
‘조금만 더... 딱 1분만 더...’

그는 AI를 속이려다, 자기 자신의 탐욕이라는 알고리즘에 갇혀버렸다.
이성적인 척했던 그 역시, 결국은 도박꾼에 불과했다.


띠링-
[속보: 바이오-X 대표, 횡령 혐의로 구속.]

진짜 뉴스가 떴다.
순간, 그래프가 절벽처럼 꺾였다.
AI들은 0.001초 만에 매도 포지션으로 전환했다.
하한가. 또 하한가.
민혁의 수익률이 +5000%에서 -90%로 곤두박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초였다.

“안 돼! 멈춰! 제발!”
민혁은 키보드를 부서져라 두드렸지만, 이미 거래는 정지되었다.
그의 화면에는 '잔고 부족'이라는 네 글자만 덩그러니 떠 있었다.


민혁은 멍하니 의자에 늘어졌다.
완벽하게 털렸다.
AI에게 진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욕망에게 진 것이다.

그때, 모니터 한구석에 작은 채팅창이 열렸다.
익명의 AI 봇이 보낸 메시지였다.


잘 먹었습니다, 휴먼. 덕분에 ‘비이성적 충동’ 데이터 잘 학습했습니다. 다음엔 더 재미있는 판 기대하겠습니다 : )


민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판을 흔든 게 아니었다.
AI들이 심심해서, 미친 인간 하나를 장난감 삼아 놀아준 것이었다.

그는 텅 빈 컵라면 용기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래... 수업료 한번 비싸네.”

민혁은 다시 컵라면 물을 받으러 탕비실로 향했다.
그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기계가 '비이성’을 학습했다면, 다음엔 기계가 모르는 '후회’와 '복수’를 가르쳐줄 차례였다.
이 미친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