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 교실 이데아

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2 : 넥스트 휴먼

by 공감디렉터J


“자, 여러분. 오늘 역사 수업은 여기까지. 질문 있는 사람?”

담임 교사 수현(29세)이 교탁 앞에 섰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수현이 아닌, 책상 위 태블릿 PC 속 AI 튜터 '아리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리스, 조선 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과 사망 원인 분석해줘.”
“아리스, 이 수학 문제 풀이 과정 3D로 보여줘.”


아이들은 수현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수현은 머쓱하게 분필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역할은 '지식 전달자’가 아니었다. AI가 교과 진도를 1:1 맞춤형으로 완벽하게 가르치는 동안, 그녀는 아이들이 졸지는 않는지, 싸우지는 않는지 감시하는 '보육 교사’에 가까웠다.

“선생님, 저 화장실이요.”
“어, 그래 다녀와.”
이것이 수현이 하루 종일 하는 대화의 전부였다.


방과 후 상담 시간.
수현은 문제아로 불리는 민재를 상담실로 불렀다.
민재는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친구들에게 시비를 걸기 일쑤였다.
“민재야, 요즘 무슨 일 있니? 성적도 많이 떨어지고...”

민재는 껌을 씹으며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
“쌤이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성적은 아리스가 관리하는데.”
“그래도 선생님은 네가 걱정돼서...”
“걱정은 무슨. 쌤 월급 루팡이잖아요. 아리스가 쌤보다 설명도 잘하고, 화도 안 내고, 훨씬 똑똑한데 쌤이 왜

필요해요?”

수현은 말문이 막혔다.
아이의 말은 잔인했지만 사실이었다.
그녀는 지식 경쟁에서 AI에게 완패했다. 권위도, 존경도 사라진 교단에서 그녀는 허수아비였다.

“나갈래요. 아리스랑 레벨업 해야 돼서.”
민재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수현은 텅 빈 상담실에 홀로 남겨졌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는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지?’

그날 밤, 수현은 사직서를 썼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무시당하며 버틸 자신이 없었다.


다음 날, 사직서를 품에 안고 출근한 수현은 교무실이 아닌 교실 복도에서 멈칫했다.
교실 안이 소란스러웠다.
“야! 너 말 다 했어?”
“이게 진짜!”

민재가 다른 반 아이와 멱살잡이를 하고 있었다.
주먹이 오가고 책상이 넘어졌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하기 바빴고, 태블릿 속 AI 튜터 아리스는 평온한 목소리로 반복하고 있었다.
'경고. 교실 내 소음 수치 초과. 학습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정숙해주십시오.'

기계는 싸움을 말리지 못했다.
폭력이라는 돌발 상황, 분노라는 감정의 폭발 앞에서 AI는 무력한 안내 방송 기계일 뿐이었다.

수현은 본능적으로 교실로 뛰어들어갔다.
“그만해!”
그녀는 거구의 민재와 상대 아이 사이를 몸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퍽!
민재가 휘두른 주먹이 수현의 어깨를 강타했다.
악 소리와 함께 수현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순간,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흥분해서 씩씩거리던 민재의 눈이 커졌다.
“서... 선생님?”

수현은 아픈 어깨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민재의 뺨을 올려붙이는 대신, 떨고 있는 아이를 꽉 끌어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민재야. 많이 화났구나. 선생님이 몰라줘서 미안해.”


민재의 몸이 굳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온기였다.
부모님은 바빴고, AI 아리스는 "화내지 마십시오"라고 훈계만 했지, 이렇게 떨리는 몸으로 안아준 적은 없었다.
민재의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더니, 이내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으아앙... 선생님...”

아이들이 촬영하던 폰을 내렸다.
AI 아리스는 여전히 '정숙하십시오'라고 떠들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멍하니 수현과 민재를 바라보았다.
데이터로는 해결되지 않는, 진짜 위로와 공감이 그곳에 있었다.


그날 오후, 수현은 사직서를 찢어버렸다.
그녀는 깨달았다.
AI는 아이들의 머리를 채워줄 수 있을지 몰라도, 가슴을 채워줄 수는 없다는 것을.
아이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건 완벽한 정답이 아니라,
함께 아파해주고, 대신 맞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줄 '불완전한 어른’이라는 것을.

종례 시간.
수현이 교단에 섰다.
“자, 태블릿 다 덮어. 오늘은 역사 공부 안 한다.”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그럼 뭐 해요?”

수현이 칠판에 크게 글씨를 썼다.

친구랑 화해하는 법. (feat. 떡볶이)


“오늘 선생님이 쏜다. 다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가자. 민재 너는 튀김 담당이야. 알았지?”

민재가 퉁퉁 부은 눈으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넵.”

교실 안에 처음으로 AI의 기계음이 아닌, 아이들의 진짜 웃음소리가 와글와글 퍼져나갔다.
그것은 그 어떤 첨단 기술로도 구현할 수 없는, 가장 인간적인 소음이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