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 배달의 기수

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2 : 넥스트 휴먼

by 공감디렉터J


하늘은 거대한 벌집 같았다.
수천, 수만 대의 드론들이 윙윙거리며 서울 상공을 뒤덮고 있었다.
택배, 음식, 생필품. 모든 물류는 자율주행 드론 '헤르메스(Hermes)'가 독점했다.

빠르고, 정확하고, 안전했다.
단, ‘안전 구역(Green Zone)’ 안에서만.


도시 외곽, 버려진 지하철 터널과 재개발이 중단된 슬럼가.
이곳은 GPS 신호가 잡히지 않고, 불법 전파 방해 장치가 난무해 드론이 진입할 수 없는 '데드 존(Dead Zone)'이었다.
이곳에 사는 빈민, 불법 체류자, 범죄자들에게 물건을 전해주는 건 오직 인간 라이더들의 몫이었다.
그들을 ‘러너(Runner)’라고 불렀다.

진수(24세)는 낡은 전동 바이크의 배터리를 갈아 끼웠다.
그의 헬멧에는 불법 개조한 야간 투시경이 달려 있었다.
“오늘 배달 목록... 항생제, 분유, 그리고... 구형 반도체 칩?”

의뢰인은 익명이었다. 보수는 비트코인.
진수는 배낭을 메고 어둠 속으로 질주했다.
지하 터널의 눅눅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이곳은 법도, AI의 감시도 닿지 않는 무법지대였다.

“어이, 러너! 통행료 내고 가야지!”
어둠 속에서 쇠파이프를 든 갱단이 나타났다.
드론은 이런 놈들을 피해 고도를 높이면 그만이지만, 인간은 땅을 밟고 가야 하기에 피할 수 없었다.
진수는 바이크의 출력을 최대로 높였다.

부아앙-
“비켜!”
진수는 갱단 사이를 곡예하듯 뚫고 지나갔다. 돌멩이가 날아와 헬멧을 때렸다.
이것이 러너의 삶이었다. AI가 포기한 위험 수당을 목숨값으로 챙기는 일.


목적지는 폐쇄된 지하 벙커였다.
녹슨 철문을 두드리자, 경계심 가득한 눈빛의 노인이 문을 열었다.
“물건은?”
진수는 항생제와 분유를 건넸다. 노인 뒤로 아픈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이들은 신분이 없어 병원에도 못 가고, 정식 드론 배송도 시킬 수 없는 유령들이었다.
진수는 그들이 내미는 꼬깃꼬깃한 현금을 받지 않았다.
“됐어요. 애 분유나 더 사 먹이세요.”

그는 마지막 물건인 '구형 반도체 칩’을 배달하러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과거 테크 기업의 천재 엔지니어였던 '닥터 K’였다.
그는 왜 이런 시궁창에 숨어 있는 걸까?

“고맙네, 청년. 이게 없으면 내 '아이들’을 고칠 수가 없어서.”
닥터 K가 가리킨 곳에는 폐기 처분된 구형 로봇들이 가득했다.
한쪽 팔이 없거나, 눈이 깨진 로봇들.
세상이 '성능 미달’이라며 버린 고철들이었다.
닥터 K는 진수가 가져온 칩으로 로봇들을 수리하고 있었다.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돈도 안 되는데.”
진수가 물었다.

“이 녀석들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
닥터 K가 로봇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최신 AI들은 클라우드에 연결돼서 매일 리셋되지만, 이 구형들은 하드디스크에 주인과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 주인은 새 모델을 산다고 얘들을 버렸지만, 얘들은 아직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네.”

로봇 하나가 지직거리는 스피커로 말했다.
“...민지야... 학교 다녀왔니? 간식... 줄까...”

진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가장 효율적인 드론들이 날아다니는 세상 위쪽은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가장 비효율적이고 위험한 이곳 지하에는 버려진 마음들이 모여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벙커의 경보가 울렸다.
“단속반이다! 경찰 드론이 떴어!”

닥터 K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청년! 도망가게! 자네까지 잡히면 안 돼!”

“이 로봇들은요?”
“내가 막을 테니 어서 가!”

진수는 벙커 밖으로 뛰쳐나왔다.
하늘에서 붉은 레이저 불빛들이 쏟아져 내렸다. 경찰 드론 부대였다.
진수는 바이크에 올라타려다 멈췄다.
지하 벙커 입구에서 닥터 K가 쇠막대기 하나를 들고 드론들에 맞서고 있었다. 그 뒤에는 덜덜 떨며 서로를 껴안고 있는 고물 로봇들이 있었다.

“젠장.”

진수는 핸들을 꺾었다.
그는 바이크의 라이트를 상향등으로 켜고 드론 떼를 향해 돌진했다.
“야 이 깡통들아! 나 잡아봐라!”

그는 일부러 요란하게 엔진 소리를 내며 드론들의 시선을 끌었다.
“타겟 변경. 고속 이동 물체 추적.”
드론들이 방향을 틀어 진수를 쫓기 시작했다.

진수는 미친 듯이 웃으며 미로 같은 골목길을 질주했다.
오늘 배달은 적자가 분명했다. 돈은 한 푼도 못 받았다.
하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전율은 비트코인 따위와 바꿀 수 없었다.


그는 물건이 아니라 '희망’을 배달했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누군가의 소중한 기억을 지켜냈다.

“이게 진짜 러너의 길이지.”

진수는 좁은 틈새로 바이크를 눕혀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드론들이 벽에 부딪혀 폭발하는 소리가 뒤따랐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등 뒤로,
버려진 도시의 밤이 처음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