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2 : 넥스트 휴먼
“다음 지원자, 김도현 님. 입장하세요.”
차가운 안내 방송에 도현(27세)은 마른침을 삼켰다.
면접장 문을 열자, 사람은 없었다.
책상 위에 놓인 태블릿 PC와 카메라 렌즈 하나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웃고 있는 AI 아바타 'HR-Master’가 떠 있었다.
“반갑습니다, 도현 님. 편하게 앉으세요. 심박수가 110bpm이네요. 긴장 푸시고요.”
도현은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이 AI 면접관은 지원자의 표정, 음성 떨림, 동공 움직임, 사용하는 단어의 빈도수까지 분석해 '직무 적합성’을 평가한다.
합격 비법은 간단했다.
'AI가 좋아하는 인재상’을 연기하는 것.
도현은 지난 6개월 동안 학원에서 배웠다.
어떤 질문이 나와도 ‘도전’, ‘열정’, ‘협력’, '데이터’라는 단어를 섞어서 말할 것.
눈은 카메라 렌즈를 정확히 응시하되, 3초에 한 번씩 부드럽게 깜빡일 것.
입꼬리는 항상 15도 올라간 상태를 유지할 것.
“자, 첫 번째 질문입니다.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내렸을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현은 준비된 답변을 기계처럼 읊었다.
“네, 우선 상사분의 의도를 파악하고,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뒤, 정중하게 대안을 제시하여 협력적인 결과를 도출하겠습니다.”
완벽했다.
화면 속 게이지가 [적합도: 92%]로 올라갔다.
“훌륭하군요. 그럼 다음 질문...”
면접은 순조로웠다. 도현은 자신의 진짜 생각 따위는 철저히 숨겼다.
사실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하면 '속으로 욕하고 그냥 한다’가 정답이었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바로 탈락이다.
그는 AI가 듣고 싶어 하는 달콤한 거짓말만 늘어놓는 '키워드 자판기’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에서 문제가 생겼다.
“도현 님은 3년 전, SNS에 '회사 다니기 싫다. 로또가 답이다’라는 글을 올리신 적이 있네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현은 당황했다.
SNS 크롤링까지 할 줄은 몰랐다.
심박수가 140까지 치솟았다.
“아... 그건... 철없던 시절의...”
[진실성 지수: 급격히 하락 중. 경고.]
화면이 붉게 깜빡였다.
도현은 순간 울컥했다.
누구나 한 번쯤 할 수 있는 푸념 아닌가?
그걸 가지고 내 인성을 평가해?
이 기계 덩어리가 내 인생을 뭘 안다고?
도현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더 이상 연기하지 않기로 했다.
“네, 썼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AI 면접관이 잠시 멈칫했다. [예상 답변 범주 이탈. 재분석 중.]
“회사 다니기 싫죠. 누가 좋아서 다닙니까? 먹고살려고, 대출금 갚으려고 다니는 거죠. 하지만!”
도현이 카메라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합니다. 짤리면 안 되니까요.
'열정’이나 ‘자아실현’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보다, '생존 본능’이 훨씬 더 강력한 동기부여 아닙니까?
당신 데이터에는 그런 거 없습니까?
배고픔, 절박함, 카드값의 공포... 그런 게 진짜 인간을 움직이는 연료라고요!”
면접장은 정적에 휩싸였다.
도현은 숨을 몰아쉬었다.
망했다. 100% 탈락이다.
하지만 속은 시원했다. 지난 6개월간 쓰고 있던 가식을 벗어던진 기분이었다.
“이상입니다. 수고하십시오.”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가려 했다.
그때, 태블릿에서 띵동 소리가 났다.
[최종 결과: 합격]
도현은 멈춰 섰다.
“네?”
AI 아바타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거짓된 긍정’ 패턴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의 영업 3팀은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솔직함’과 '깡’으로 버티는 인재를 원했습니다.
귀하의 ‘분노’ 데이터는 해당 직무의 핵심 역량인 '전투적 마인드’와 98% 일치합니다.
축하합니다. 내일부터 출근하십시오.”
도현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연기할 때는 떨어지더니, 성질을 부리니까 붙었다.
이 또한 AI의 고도화된 계산일까, 아니면 오류일까?
어쨌든 그는 취업했다.
가장 인간적인 밑바닥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기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도현은 면접장을 나오며 중얼거렸다.
“역시... 인생은 실전이야, 이 깡통아.”
그의 발걸음은 들어올 때보다 훨씬 가볍고,
무엇보다 '사람’다워 보였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