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3 : The Glitch
“기억 하나 팝니다. A급입니다. 강렬하고, 자극적이죠.”
허름한 전당포 간판을 달고 있지만, 이곳은 불법 '기억 거래소’였다.
후드를 쓴 남자가 카운터에 작은 메모리 칩을 올려놓았다.
주인은 돋보기로 칩을 훑어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어디 보자... ‘첫사랑의 추억’? 에이, 이건 너무 흔해. 요즘은 ‘도파민 터지는 거’ 아니면 안 팔려.”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른 칩을 꺼냈다.
“그럼 이건요? ‘은행 강도 성공의 순간’. 심박수 180까지 올라갑니다. 짜릿해요.”
노인의 눈이 번뜩였다.
“오호, 이건 좀 되겠네. 장물은 아니지?”
“제가 직접... 겪은 겁니다.”
이곳에서는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가장 소중하거나 자극적인 기억을 팔아치웠다.
기억을 추출하면 원본은 뇌에서 사라진다.
돈을 얻는 대신 추억을 잃는 것이다.
반대로 부자들은 남의 짜릿한 기억을 사서 자신의 뇌에 이식해 '간접 체험’을 즐겼다.
그날 밤, 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거래소로 들어왔다.
그의 이름은 강우(40세). 눈빛이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돈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제 기억... 다시 찾고 싶습니다.”
강우가 애원했다.
“5년 전에 여기서 판 기억이 있어요. 날짜는 2035년 12월 24일. 제발요...”
노인은 장부를 뒤적였다.
“5년 전이라... 이미 팔렸을 텐데. 뭐였지?”
“살인... 기억입니다.”
노인의 손이 멈췄다.
강우는 연쇄살인마였다.
5년 전, 그는 죄책감과 공포를 견디지 못해 자신이 저지른 살인의 기억들을 모조리 추출해 이곳에 팔아버렸다.
기억을 지운 그는 평범한 시민으로, 착한 남편으로, 자상한 아빠로 5년을 살았다.
자신이 괴물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그런데 최근, 뉴스에서 미제 살인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 찾아온 사설 탐정이 그를 의심하기 시작하자, 지워진 기억의 파편들이 악몽처럼 그를 괴롭혔다.
그는 확인해야 했다.
내가 정말 사람을 죽였는지. 아니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건지.
“아, 이거군. ‘크리스마스의 악몽’ 세트.”
노인이 먼지 쌓인 상자에서 붉은색 칩 하나를 꺼냈다.
“운이 좋네. 너무 끔찍해서 반품 들어온 거야. 사간 놈이 이거 꽂았다가 정신병원 갔거든.”
강우는 떨리는 손으로 칩을 받아 들었다.
“지금...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는 칩을 관자놀이의 포트에 꽂았다.
파밧-
전류가 흐르고, 뇌 속으로 5년 전의 그날 밤이 들이닥쳤다.
눈 내리는 골목길. 손에 쥔 차가운 칼의 감촉.
여자의 비명 소리. 붉은 피가 눈 위에 흩뿌려지는 광경.
그리고... 여자의 얼굴.
“헉!!”
강우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죽인 여자는...
지금 자신의 아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금 아내와 똑같이 생긴 쌍둥이 동생이었다.
그는 5년 전, 짝사랑하던 여자의 동생을 우발적으로 살해했고, 그 기억을 지운 뒤 아무것도 모른 채 언니인 지금의 아내에게 접근해 결혼했던 것이다.
그는 매일 밤, 자신이 죽인 여자의 언니를 안고 잤다.
“우웨액!”
강우는 구토를 했다.
기억이 돌아오자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이, 죽어가던 처제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이 끔찍한 진실을 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환불은 안 돼.”
노인이 무심하게 말했다.
강우는 칩을 뽑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발로 짓이겼다.
“아니야... 이거 내 기억 아니야! 거짓말이야!”
그는 울부짖으며 자신의 머리를 벽에 찧었다.
다시 잊고 싶었다.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었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고 탐정이 들어왔다.
“강우 씨, 여기 있었군요.”
탐정의 뒤에는 경찰 드론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방금 기억 추출 내역 조회했습니다. 본인이 본인 기억을 샀더군요? 그게 바로 자백 증거입니다.”
강우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탐정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살인자의 눈물이 아니었다.
자신의 인생이 통째로 거짓이었음을 깨달은, 껍데기만 남은 인간의 절규였다.
“제발... 다시 지워줘...
나 우리 딸 보러 가야 돼... 아내가 기다려...”
강우는 탐정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하지만 경찰 드론이 수갑을 채웠다.
차가운 수갑의 감촉만이 그가 피할 수 없는 유일한 현실이었다.
기억 거래소의 노인은 혀를 찼다.
“쯧쯧. 기억은 지울 수 있어도, 죄는 안 지워지는 법이지.”
그는 부서진 칩 조각들을 빗자루로 쓸어 담으며 중얼거렸다.
“다음 손님은 좀 행복한 기억을 가져왔으면 좋겠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